대빈창을 아시는가

설송도雪松圖와 천이遷移

대빈창 2024. 2. 1. 07:30

자연은 항상 변할 수밖에 없다. 천이遷移는 산림 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숲으로 변화되는 현상을 가리켰다. 빈 땅에 한해살이풀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해살이풀이 뒤를 잇는다. 키 작은 나무 관목이 들어섰다. 키 큰 나무 침엽수 소나무가 정착했다. 척박한 땅에서 소나무는 잘 자랐다. 흙이 비옥해지고 활엽수 참나무류가 들어섰다.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의 마지막 단계에 등장했다. 외부 교란이 없는 서어나무 숲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온대림의 극상림極相林이었다.

올 겨울은 눈이 잦다. 아침 산책에서 만난 이미지였다. 봉구산자락 옛길은 흔들거리며 출렁이며 대빈창 해변을 향했다. 길가 위아래로 밭들이 산자락을 깊숙이 베어 먹었다. 외딴섬 초기 정착민들의 여유인지 모르겠다. 옛길이 휘돌아가는 산모퉁이에 소나무와 참나무의 작은 숲이 터널을 이루었다. 길가 소나무에 경사면의 소나무가 상체를 기댄 것처럼 보였다. 조선 문인화에서 독보적 경지를 이룬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설송도雪松圖〉를 떠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종이에 수묵 그림 크기는 117.2x52.9㎝다. 바위에 뿌리를 드러낸 눈 덮인 두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그렸다. 앞 나무는 일직선으로 곧게 자랐고, 뒤의 소나무는 90도로 상체를 꺾었다. 〈설송도雪松圖〉는 능호관의 최고 명작으로 손꼽혔다. 이인상은 “조선 후기 선비화가 중에서 가장 깔끔한 남종화풍을 이룩한 작가”로 예술적 찬사를 받았다. 그림의 소나무는 90도로 꺾였으나, 주문도의 소나무는 45도로 수그렸다.

그 옆 부러진 아름드리나무는 참나무다. 참나무는 없다. 갈잎큰키나무의 참나무 속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참나무 속 나무들을 모두 도토리를 맺어 도토리나무라고 한다. 몇 해 전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에 나서면서 주머니마다 열매를 주워 돌아와 도토리묵을 쒔다. 그렇다. 상수리나무였다. 2019년 태풍 링링이 서해를 관통했을 때 참나무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했다.

참나무 등살에 소나무는 햇빛을 받으려고, 자라면서 줄기를 길가로 틀었다. 〈설송도雪松圖〉의 소나무도 활엽수의 가지를 피해 줄기를 틀었을 것이다. 영월의 단종 장릉, 유배지 청령포淸泠浦의 소나무들도 햇살을 받으려고 묘와 단종어소를 향해 가지를 뻗었다. 우리들의 측은지심은 생각했다. 소나무들도 슬픔을 이기지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 소나무들은 한 줌 햇살을 더 받기 위해 가지를 빈 공간으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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