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7

대빈창 2014. 4. 28. 07:07

 

나는 전나무 숲길을 따라 피안에서 속계로 나왔다. 명징한 대기의 내소사 풍경은 투명한 유리상자 안의 진귀한 보물 같았다. 부석사, 대둔사가 불교적 장엄과 화려함을 자랑한다면 내소사는 찾는이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정겨움이 숨어 있었다. 마음의 준비없이 고향의 부담없는 친구를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내소사를 들러볼 일이다. 설화적 파랑새와 현실적 파랑새 그리고 역사적 파랑새를 찾아가는 것이 이번 답사의 여정이었다.

내소사 일주문앞 공터의 부안행 시내버스가 발차를 알리는 경적소리를 울렸다. 내소사로 들어올 때 우려했던 바와 달리 곰소나 부안으로 빠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었다. 한겨울의 찬 대기속의 풍경은 투명했다. 내소사는 능가산의 품 안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았다. 서녁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차창으로 금빛새처럼 비껴 쏟아졌다. 전설속의 피안 세계를 날아다니는 파랑새와 작별하고 나는 현실의 파랑새를 만나기 위해 전주로 길을 떠났다. 하지만 현실에서 파랑새를 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미승의 장난끼가 파랑새를 날려 버렸듯이, 나의 현실인식과 행동양태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라는 자기판단을 내리고 있었으니. 부안은 휴일이라 그런지 혼잡스럽다 못해 어수선했다. 길거리에 마구잡이로 주차한 차량들로 버스가 곡예운전을 했다. 차도까지 쏟아진 인파들은 하나같이 결혼식 하객들이었다. 한적한 시골 소읍에 이렇게 차량과 사람이 많을수가. 몇년 만에 찾아온 길일 인지도 몰랐다. 젊은 남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오늘은 신혼부부에게 파랑새를 쫓아가는 출발선이었다.

부안읍을 거쳐 이번 답사여정의 시발지인 전주에 도착했다. 시외버스터미널옆 초원식당에서 백반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푸짐할 때 우리는 흔히 ‘손이 크다’고 한다. 그랬다. 내가 지니고 있던 남도 음식에 대한 인식을 전주에서 만났다. 주인 아줌마의 푸짐한 몸피처럼 손맛이 우러나는 정갈한 반찬에 입맛이 당겨 공기밥을 추가했다. 손님이 떠난 탁자의 빈그릇을 치워내는 아줌마의 손길은 보기보다 쟀다. 포만감을 만끽하며 나는 메뉴판을 보고 5,000원짜리를 건넸다.

“손님, 거스름 돈 받아가야죠”

아줌마가 계산착오를 일으켰다. 메뉴판은 분명 백반값이 4,000원이었다.

“공기밥을 하나 더 먹었는데요”

“젊은 남정네가 당연하죠”하며 아줌마는 내 손에 1,000원을 집어 주었다. 이번 여정에서 모처럼 만난 훈훈함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골목길을 나서면서 식당을 다시한번 바라 보았다. 단층 스레트 지붕에 겉벽의 하늘색 페인트는 버짐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벗겨졌다. 시멘트벽은 거미줄같은 미세한 균열로 가득했다. 상호 간판도 언청이처럼 비뚤어져 퇴락한 기운이 역력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