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암은 깍아지른 천인암 절벽이 건너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정면3칸, 측면3칸 관음전의 현판이 보이지 않았다. 전각에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지장보살좌상이 모셔졌다. 넓지 않은 마당을 둔 요사채 창방 위에 이름을 알 수없는 짐승과 도깨비 형상이 끼워졌다. 출입금지구역 설법전 뒤 청신한 산죽이 우거졌다. 마애불을 향해 산길을 오르니 ‘지장보궁’이라는 현판이 현대식 대문에 붙었다. 가파르고 좁은 자연석 계단이 바위틈으로 나 있었다. 계단을 다 오르자 나타난 작은 전각은 ‘도솔천내원궁’ 이었다. 깨끗하게 빗질된 마당이 정갈했다. 창호지 문을 뚫고 ‘관세음보살’ 염불과 목탁소리 만이 고적한 겨울산사에서 바람소리와 벗하고 있었다. 도솔암을 오르는 길 우측으로 참당암으로 향하는 샛길이 나온다. 여기 약사전에 인장보살이 모셔져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운사는 지장삼장 신앙이 고스란히 확인되었다. 도솔암의 천장(天藏)보살과 참당암의 지지(地持)보살 그리고 선운사 관음전의 지장(地藏)보살이 모두 갖추어진 지장도량 이었다.
인도의 오랜 옛날, 18세의 꽃다운 처녀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시라선견은 불심이 깊어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났다. 어머니 열제리는 삿되고 방탕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소녀는 모든 재산을 팔아 어머니에게 재를 올릴 절을 찾아 길을 떠났다. 하지만 길거리의 불쌍한 걸인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남은 옷까지 벗어주었다. 소녀는 구덩이 속에 들어가 벗은 몸으로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기도했다. 이때 부처님이 나타나 소망을 성취시켜 주었다. 그후 소녀는 지장보살(땅 속에 몸을 갈무리한 보살) 이라고 불렸다. 지장보살은 성불하지 못한 중생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자기도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했다. 지장보살의 본원력은 자비와 용서, 사랑이다. 지옥문에 지켜서서 중생을 구원하여 극락으로 인도한다.
도솔천내원궁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바위절벽을 돌아서니 거대한 마애불이 있었다. 고려초 지방호족이 발원하여 조성한 보물 제1,200호인 동불암마애불이다. 마애불 머리위의 네모진 구멍들과 부러진 목재의 흔적은 누각식 지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불전함이 철책앞에 놓였고, 소나무 두그루가 마애불을 호위하고 섰다. 부처님의 상호로서 원만하기는 커녕 오히려 위압적인 이 마애불에 117년전 역사적 파랑새의 현신이 있었다. 파랑새 현신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동학교도 오세영이 쓴 ‘동학사’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마애불의 배꼽에 비결이 들어있어 그것이 햇빛을 보는날 조선은 망하는데, 하필이면 벼락살도 함께있어 손대는 사람은 벼락에 맞아 죽었다.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의 배꼽에서 서기가 뻗치는 것을 보고 열었는데, 벼락이 쳐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대목만 얼핏보고 도로 넣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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