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미당 서정주시비가 길가에 바짝 서있다. 내소사에서 ‘내소사 대웅전 단청’을 떠 올렷는데 선운사에서 미당의 육필원고를 새겨놓은 시비를 만났다. 고창 선운리는 시인의 고향이며 시집 『질마재 신화』의 무대였다. 미당의 시는 경험적 삶의 내용을 형이상학적 질서의 세계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만 들이대고 시비도 읽지 않으채 내쳐 걸음을 내디뎠다. 어느 평론가는 미당을 ‘시 쓰는 일에 있어서 백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인물’로 추앙했지만, 나의 머리속은 온통 태평양전쟁말기 일본 군국주의의 악명높은 가미가제특공대를 찬미한 그의 친일시 전형인 “마쓰이 오장 송가”로 들끓고 있었다.
(······)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印氏의 둘째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으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
궁금했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도덕적 양심의 상관관계가. 선운사 위락단지에서 정읍행 직행에 몸을 실었다. 40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 예상외의 짧은 거리였다. 원래 나는 내일 전라선 전주발 상행선 무궁화호를 예매했었다. 늦은 점심을 정읍역 앞에서 해결했다. 식탁 한 귀퉁이에 열차표가 놓였다. 호남선 정읍역. 나는 상행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눈이라도 쏟아질려는 지 하늘이 무거운 낮색으로 가라앉았다. 기차가 천천히 플랫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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