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뜬돌과 낮꿈 - 2

대빈창 2014. 7. 10. 07:16

서원 맨 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이른바 유교전통 교육장소로서 ‘충효전시관’이 새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경내를 돌면서 느낀 감성을 일시에 무너트리는 어이없는 몰골이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는 천박한 원색 단청으로 치장하여, 학식 높은 선비들의 고담한 자리에 몰상식한 기녀가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발길을 돌려 경렴정 뒤 철책 난간에 기대어 죽계천 너머 취한대를 바라보았다. 울창한 수림을 등지고 계곡을 마주한 정자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아쉽게 취한대로 가는 길은 철책으로 가로막혔다. 당간지주 앞 너럭바위에 앉으니 뜰 안의 소나무가 눈 앞이었다.

‘남산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자연스럽게 애국가 2절이 떠올랐다. 소수서원을 둘러싼 소나무들은 한마디로 장쾌했다. 수백 년 족히 세월의 풍상을 이겨냈을 껍질 비늘 하나하나와 골이 마치 가뭄의 갈라진 논바닥처럼 확연했다. 서원을 잰 걸음으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쫓아 주차장으로 나서니 먼 산등성이의 그늘이 한층 짙어졌다.

진경산수화의 개척자 겸재의 그림에 ‘교남명승첩’이 있다. 장첩된 그림 중에 전경으로 안개가 산허리를 감싼 암산을 전경에 포치하고 왼편 골짜기에 서너 채 민가가 자리 잡았다. 후경으로 고산준봉 허리쯤 석단 위아래로 절집이 들어섰고 상단 오른쪽 여백의 화제는 '순흥 부석사'다. 나는 부석사 답사를 내일로 미루고 잠자리부터 찾았다. 순흥 면소재지에서 첫날의 숙식을 해결했다.

부석사행 시내버스는 서너 명의 손님을 태우고 심심산골로 깊이 들어갔다. 험한 산길이지만 2차선으로 깨끗하게 포장되었다. 용도가 무엇인지 모를 말끔하게 씻긴 삽 한 자루가 버스앞문 난간 고무 밴드에 묶였다. 나는 시인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떠 올렸다. 이른 아침 근경의 산들이 겸재의 그림처럼 안개이불에 포근히 감싸였다. 순흥 면소재지에서 부석사로 가는 길 양안은 붉은 패랭이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검은 아스팔트와 붉은 꽃띠, 야트막한 구릉에 빼곡히 들어찬 사과밭. 힘 찬 줄기와 역동적인 가지를 허공으로 뻗은 나무에 덜 여문 푸른 사과가 질리게 매달렸다. 첩첩히 겹친 산 주름이 한국화의 농담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 모퉁이에 음식집이 오기종기 모였다. 작은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물을 흘리는 밥집의 산채정식으로 허기를 메웠다. 물레방아는 제법 세월을 먹어 이끼를 뒤집어썼고, 여린 잎사귀를 하늘거리는 풀이 터 잡았다. 쟁반에 음식을 날라 오는 그을린 아낙네의 모습에 마음이 어두웠다. 관광지입구 식당은 두세 명의 시골 아낙네들이 일손을 거들었다. 사하촌에서 품을 팔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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