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뜬돌과 낮꿈 - 3

대빈창 2014. 8. 25. 05:26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냇가 돌로 다진 경사로를 오르면 1km 남짓 거리에 일주문이 은행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진입로 양안은 은행나무가 촘촘히 도열했다. 그 너머 다시 사과밭이 진을 쳤다. 구리 빛 산골 아낙들이 길 양편 노점에서 사과와 자두를 팔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향하면 보물 제225호 당간지주가 답사객을 맞아 주었다. 돌기둥 틈에 낀 당간 받침돌에 물이 고였다. 천왕문에 들어서자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 서방광목천왕이 도솔천의 수호신답게 눈을 부릅뜬 험상궂은 얼굴로 발아래 아귀를 밟고 있었다.

나는 요사채를 지나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는 9품 만다라를 건축적으로 조형했다는 대석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일단 안양루에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경관을 조망하고 싶었다. 그렇다. 백두대간의 산 주름이 연이어 겹치는 일대 장관이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故 최순우관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무량수전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 된 듯 싶어진다.’

경내에 창건설화의 주인공인 선묘아가씨와 연관된 유물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의상의 당나라 유학 때 젊고 기품있는 이국의 수도자에게 반한 선묘낭자는 온갖 교태로 유혹하였으나 그는 구도일념 하나로 꿈쩍도 않았다. 의상의 인품에 탄복한 그녀는 죽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을 다짐했다. 가람 여기저기 선묘설화와 관련있는 선묘각, 석룡, 선묘정이 널렸다. 나는 무량수전 뒤 선묘각부터 찾았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시골집 뒷간보다 못한 옹색한 단칸집에 근래에 그려진 선묘탱화가 페인트 냄새를 풍겼다. 발길을 돌려 조사당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떡갈나무와 단풍나무로 울창하고 산죽이 푸르렀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이 햇살을 튕겨냈다. 산죽의 싱그러운 푸르름이 뿜어내는 찬 기운에 이마의 땀이 저절로 잦아 들었다. 산을 오르는 호젓한 오솔길. 등산화에 밟히는 부드러운 흙길의 촉감을 즐기는데 갑자기 무신경속으로 낯선 틈입자가 들어왔다. 고개를 치켜드니 낯선 여자가 놀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려다보았다. 멍하니 서로의 눈빛만 바라보다 제 갈 길을 따라 엇갈렸다. 길 끝에 국보 제19호 조사당이 있었다. 원래 조사당 안벽에 국보 제46호인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의 벽화 6점이 그려졌다. 유존되는 사찰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은 현재 보장각에 보관되었다. 처마 밑 의상대사가 짚던 지팡이였다는 골담초가 철책의 포로가 되었다. 이 골담초는 선비화로 퇴계가 시를 읊었고,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소개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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