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변산행은 나에게 세번 째 발걸음이었다. 앞서 두번은 바깥 변산의 적벽강과 채석강을 돌아보는 자연경관 유람이었다. 시선 이태백이 강물에 뜬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소동파가 노닐며 적벽부를 읊었다는 적벽강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국의 채석강과 적벽강은 강(江)이지만 변산반도의 채석강, 적벽강은 퇴적과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바닷가에 입체적으로 드러난 해안 퇴적암 절벽이었다. 들물에는 바닷물이 절벽을 차고 올라와 썰물때만 수십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같은 퇴적암절벽의 장관과 입구가 한반도 지도를 닮아 신비감마저 자아내는 해식 동굴을 볼 수 있다.
직행을 기다리며 아침을 해결했다. 터미널 옆 한식집을 찾아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홀에 정장 차림의 젊은이가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제 전주터미널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느꼈던 생기를 찾을 수 없는 무기력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고 어투가 냉랭했다. 예전 답사에서 느꼈던 훈훈함은 눈꼽만큼도 찾기 힘들었다. 서늘한 기운이 묵지근했다. 배낭을 멘 나의 행색이 면구스러워 차시간이 넉넉한 것을 알면서도 서둘러 터미널로 돌아왔다. 검표원에게 돌아오는 차편을 물으니 내소사에서 곰소까지 나오면 부안읍 버스가 많다고한다. 만약 내소사에서 차편을 못 얻으면 하는 걱정으로 머뭇거리는데, 허름한 몰골의 중년남자가 옆에 바짝 붙으면서 차비를 구걸했다. 전주까지 가려는데 800원이 모자란다는 사정이다. 불기하나 없는 터미널에서 옹송거리는 승객들의 눈치를 보며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그에게 나는 1,000원을 건네주고 마침 도착한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상청의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훈훈했던 날씨가 동장군이 기지개를 켰는지 제법 쌀쌀했다. 뻣뻣했던 몸이 버스안의 스팀에 녹으면서 좌석에 허리를 깊숙히 묻었다. 그때 허름한 중년남자의 모습이 차창에 비껴갔다. 혹시 나의 적선은 값싼 동정심의 발로 였을까. 이건 왠 망념일까. 나의 마음마저도 IMF 한파를 타는 것인가. 그렇다. 동장군의 기세보다 경제현실이 우리가 느끼는 추위의 본질이었다.
얼핏 차창으로 ‘유형원선생 유적지’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였다. 유형원의 아호인 반계는 마을을 가르는 냇물에서 땄다. 인조반정으로 북인계열인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병자호란 때 피난길에서 처참한 민중의 현실을 목도하고, 할아버지가 터를 잡은 이곳에 내려와 실학의 선구자로 입지를 굳힌 반계수록을 20년 만에 완성했다. 이 곳은 전북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답사의 아쉬움이 차창에 어른거렸다. 곰소에서 내소사가는 길은 아름답다. 왼편으로 갯벌이 펼쳐졌고, 그 너머 작은섬들이 올망졸망 떠있다. 곰소는 아직 수차를 돌리는 천일염전이 있었다. 화가들의 스케치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이색적인 어촌풍경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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