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6

사원에서 일행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거대한 2개의 황금탑이었다. 작렬하는 햇살아래 탑은 번쩍이는 황금옷을 입고, 거대한 덩치로 관람객들을 압도했다. 한국 사찰의 탑은 대부분 화강암 석탑이나, 적은 수의 모전석탑 뿐이었다. 나는 석가모니의 육계를 연상시키는 황금탑의 이형성에 눈길을 빼앗겼다. 가까이 다가서니, 가로 세로 2cm 크기의 황금타일을 탑의 겉면에 입혔다. 도대체 얼마 만큼의 타일로 탑의 겉면을 장식하는 지 헤아려보는 자체가 까마득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한 황금탑은 인도양식이었다. 사원 건축물은 건축양식의 전시장이었다. 육골탑은 700여년전 스리랑카 양식으로 축조되었고, 그외 건물들은 캄보디아, 태국양식으로 한 사원에 4개국의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었다. '뿌'는 각 건축물 입구를 지키고 ..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5

호텔에서 왕궁사원으로 향하면서, 일행은 새로운 태국여성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신성한 왕궁이니만치, 가이드는 태국인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발인 전용 관광버스는 가이드까지 합쳐 일행이 10명이었다. 태국은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을 짐칸에 싣는 고집을 피웠다. 우리는 급작스럽게 필요한 물품을 쉽게 손에 넣으려 짐가방은 빈 뒷좌석에 놓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우리의 의견을 묵살했다. 무슨 연유인 지 모르겠다. 새로 동행할 가이드의 이름은 '뿌'. 지리학을 전공하였고, 32살의 노처녀였다. 나는 '뿌'가 본명인 줄 알았는데, 예명이었다. 태국도 엣날 한국처럼 오래 살라는 이유로 일부러 개똥이같은 천박한 이름을 붙였다. 어릴적 주위 사람들이 붙인 예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뿌'는 우리말로..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4

내 몸의 위치 좌표는 공간적으로 태국인데, 몸안에 내장된 시계는 여전히 한국의 똑딱! 거리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술자리를 파하고 침대에 몸을 눕힌 시간은 새벽 1시였다. 눈을 뜬 시각은 정확히 5시였다. 그렇다. 내가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눈을 뜨는 7시였다. 내 몸의 시계는 정확한 시각에 나의 의식을 열었다. 알코올에 찌든 몸의 갈증으로 냉장고의 생수를 들이키고, 다시 침대에 누워 가수면을 취했다. 아니나다를까 옆 침대의 동료 몸 시계도 나와 같은 한국시계였다. 그가 일어나 입구문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동료의 잠을 방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머리맡 삿갓등 불을 밝히고 메모를 긁적였다. 객실 바람벽은 온통 거대한 통유리로 전망이 환했다. 내가 묶고 있는 객실은 19층. 방콕 시내는 새..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3

태국 현지시각 밤 8시 5분 방콕국제공항. 입국절차가 간단했다. 담배를 피우려 밖으로 나서니, 후덥지근한 남국의 열기가 온 몸을 감쌌다. 일행은 가트에 여행용 가방을 싣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더운 열기를 피해 에어컨이 가동중인 실내로 서둘러 돌아섰다. 현지 가이드로 한국 남성과 태국 여성이 소개되었다. 2층버스 높이의 관광전용버스가 우리의 3박5일 태국여정 발이 되었다. 태국 현지기사와 조수석의 젊은 태국 청년도 일행이 되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향하면서 일행은 가이드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 남성가이드 는 36살이었다. 태국 여성가이드는 태국관광청 소속 공무원으로 이름은 '팜' 나이는 28세로 처녀였다. 태국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자국의 관광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무원 가이드를 한명씩 배정했다. ..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2

비행기는 제주도 상공에서 중국대륙의 상해로 기체를 돌렸다. 창밖 하늘은 곧은자로 일직선을 그어 3등분한 후에 초등학생들이 원색 크레파스로 색칠한 것과 같았다. 맨위 새파란 하늘, 중간 흰구름, 아래는 짙은 청색이었다. 태양은 여전히 오른 날개위에 붙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해가 지는 방향으로 나아가, 끝날 줄 모르는 일몰이 펼쳐졌다. 그때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나의 비행기 승선감은 잔잔한 물살을 가르는 경쾌한 요트로 인식되어 있는데, 웬걸 비포장도로를 우당탕! 달리는 지프의 승차감에 못지 않았다. 귀가 멍멍한 증상은 가셨지만, 흔들리는 기체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류가 불안정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기내를 도는 스튜디어스에게 일행은 붉은 와인이나 주스를 주문했다. ..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1

일행 7명은 정오에 경인북부수협앞에 모였다. 승합차 뒷칸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바퀴달린 가방을 싣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예상보다 거리는 한산하여 오후 1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3층 출국장 로비의 한 벤치에 쌓아논 짐을 가이드가 지키는 동안 일행은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지하1층 한식당으로 향했다. 우거지갈비탕이 한그릇 만원으로 비쌌다. 한술더떠 국물이 미적지근했다. 넓은 홀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통과하기도 쉽지않게 빼곡히 들어찬 테이블마다 식객들이 가득했다. 국물이 뜨겁지 않을수록 사람은 음식을 빨리 먹는다(?). 일행은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러, 눈요기로 시간을 때웠다. 흡연실만 보이면 끽연 욕망이 아귀처럼 들러 붙었다. 4시 5분 태국 방콩행 대한항공 기내, 나의 좌석번호는 5..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1

보원사는 백제가 남조인 양나라와 교역이 무르익던 6C 중엽에 창건된 고찰로 추정되었다. 그후 백제 멸망까지 거대사찰로 융성하였고,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보원사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어 통일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 보았다. 보원사는 고려조 법인국사가 머물면서 고려시기 왕권의 보호를 받는 화엄종의 대찰로 절터가 무려 3만평이나 되었다. 절이 망한 시기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 이전에 이미 폐사가 되었을 것이다.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폐사지에서 나그네를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보물 제103호인 당간지주였다. 4.2m의 잘빠진 몸매를 자랑하지만 단순한 테두리만 둘러 조각은 화려하지 않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었다. 보물 제104호인 오층석탑은 높이..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0

나그네는 하산길에 큰 절은 아니지만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는 칠갑산의 보물 장곡사 경내로 들어섰다. 칠갑산 장곡사를 중심으로 겹겹이 사방에 뻗은 산줄기에 사자산의 운곡사, 무성산의 마곡사, 계봉산의 백곡사를 일러 사곡사(四谷寺)라 하는데 밀교적 교의를 바탕으로 경영된 사찰이라는 설이 전해왔다. 마곡사의 라마교 양식 오층석탑을 보면 일리가 있었다. 장곡사의 창건은 신라 문성왕12년(850)에 보조선사가 세웠는데 경내의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번창한 것으로 보였다. 장곡사는 특이하게 2채의 대웅전이 위,아래에 자리잡았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운학루와 보물 제181호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조선중기 건물인 하대웅전이 답사객의 시선을 끌었다. 단정한 맞배지붕의 법당은 보물 제337호인 금동약사여..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9

그는 해미면소재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정류장 매표소에 들러 덕산행 직행표를 끊었다. 이제 막 정오가 넘어선 시각, 시골마을의 버스가 도착하려면 시간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온천지구인 번화한 덕산으로 나가 청양의 칠갑산에 있는 장곡사를 찾는 동선(動線)을 그렸다. 정수리에서 직각으로 내리 쏟아붓는 강렬한 햇살을 피하려 그는 해미읍성 성벽위 누각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면사무소 건물이 눈아래 내려다보이고 상큼한 바람결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휘날렸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 이때 젊은이 두 명이 걸어오더니 그를 지나쳐 누각 기둥밑 돌쩌귀에 걸터앉았다. 억양이 강하고 말투가 빠른 것으로 보아 해미읍성을 찾은 여행객으로 보였다. 뒤이어 금발의 젊은 서양여자가 다가와 그들의 맞은편 기둥에 등을 기대고..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8

다리를 건너면 일제시대 서화가로 일세를 풍미했던 해강 김규진의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조선초기 건물로서 고려양식의 맞배지붕 형식이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천연스럽게 굽은 나무로 기둥과 문지방을 삼은 심검당이 보였다. 단청이 없어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깊은맛을 느낄수 있는 건물이었다. 심검당은 송광사의 하사당, 환성사의 심검당과 함께 초기 요사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로 대접받고 있다. 나는 연못가에서 연신 담배를 물고있는 기사 아저씨의 무언의 항변을 더이상 모른체 할수없어 머뭇거리는 발길을 돌렸다. 우리나라의 성(城)은 나라중심 수도의 도성(都城)과 군,현에 위치한 읍성(邑城)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군사요충지에 성곽을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