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10

사위어가는 오후의 햇살이지만 푹푹찌는 더위는 더듬이가 잘린 곤충처럼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담양 소쇄원 - 조선 중종때 양산보가 산수좋은 곳을 골라 마련한 주거공간으로 조경한 원정.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감각이 마비된 나는 무조건 담양이라는 지명에 집착하고 있었다. 무등산 남쪽 산비탈에 자리잡은 소쇄원. 광주터미널에서 담양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긴긴 여름해가 무등산 너머로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담양터미널. 소쇄원 입구 대나무밭의 청량함을 떠올리며 차편을 묻는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황담함 그 자체였다. 운주사를 찾는 나주버스터미널의 또다른 내가 거기에 있었다. 소쇄원행 차편은 광주 동구 농산물시장앞에서 125번 버스를 이용하란다. 수중에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9

나의 마음은 벌써 화순 운주사를 향하고 있었다. 이 나라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국사의 전설이 스며있는 곳. 우리 문화의 정수 불교미술에서 그 정형성을 파괴한 거침없는 파격성. 천불천탑이 있었다는 신비한 절. 그러기에 화순 운주사는 많은 책에 소개되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을 들어도 돌베개의 답사여행의 길잡이, 새날의 한국의 불가사의, 대원사의 운주사, 학고재의 미륵 등. 그 기묘한 신비함이 나의 여정에 영향을 미쳤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계획적인 어수룩함은 - 그 조성년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기묘한 석불과 석탑군을 찾아가는 기대 이상의 흥분으로 판단력이 흐려진데 원인이 있었다. 여행 때마다 매번 겪는 준비성의 부족과 턱없는 촌놈 특유의 오기로 낭패를 당하면서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동한 것..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8

세월이 흐르면서 유선여관에도 변화가 있었다. 집의 구조와 방문 위 처마밑 작은 나무판자에 각각의 방이름을 매단 운치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한옥의 온돌방에 전기판넬을 깔고 모노륨을 덮었다. 필요 없어진 아궁이가 멍하니 입을 벌려 애처로웠으나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옛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나는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를 열어 놓은채 장판에 배를 깔고 메모노트를 긁적였다. 피워놓은 전자모기향의 향내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안뜰에는 정원수가 몇 그루 심겨졌다. 하지만 □ 집구조의 우리 선조들은 애써 피한 조경이다. 그것은 困의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큼직막한 나무대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 누렁이의 집 - 방앞 튓마루에 앉아 저녁으로 백반 밥상을 받는데 노랑이가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반가움..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7

· 단아한 연하문이 여기서부터 경내 임을 알렸다. 명기된 편액은 분명 두륜산대둔사(頭崙山大屯寺)로 새단장되어 있었다. 일제 때 頭崙山이 頭輪山으로 大屯寺가 大興寺로 잘못 표기되었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동안 대흥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을 위해 입장표에도 대둔사(대흥사)로 표기했다. 시인 고은은 '절을 찾아서'에서 대흥사를 소개하면서 부제로 - 선실에 배어있는 그윽한 차향기 -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글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추사와 소치. 초의는 추사의 도저한 지존과 소치의 고절, 초의의 시선다 경지가 한데 어우러져 해남 3절을 이룬 일이 있다. 김추사가 귀양간 제주도 남단에 허소치가 그의 향리 진도에서 건너간 일이 있고 초의선사는 그런 추사 소치와 더불어 두륜산 대흥사의 선실에서 당대의 높은..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6

보길도는 바다를 방황하는 안개에 아랫도리를 빼앗겼다. 나는 부용동 원정과 고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 368호로 지정된 세연정의 입구 안내판에는 고산의 정치적 역정이 소략하게 적혀있다. 여러차례 유배를 당하고,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우국충정으로 강화도로 향했으나, 이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에 칩거했다. 하지만 칩거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론 해남윤씨의 재력이 능히 섬 전체를 원정으로 꾸미는 거대공사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성 과정에서의 섬사람들의 노동력 징발과 그것을 보는 감정은... 또한 세연정에 배를 띄우고 미희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게 하고, 물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5

아침 햇살이 부드러운 비단결 같았다. 나는 배낭을 꾸려 민박집을 나섰다. 부용동 원정으로 향하는 나즈막한 고갯길 바른편은 해송숲이 여행자의 발걸음과 함께 한다. 왼편은 얕으막한 바위산에 듬성듬성 상록수가 바위에 억센 뿌리를 내렸다. 고개를 넘으면 해송숲이 끝나고 바다가 섬의 옆구리를 깊이 베어 먹었다. 제주도를 향하다 보길도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고산이 닺을 내린 곳은 현재의 청별 포구가 아닌 이곳으로 짐작된다. 몇 채의 가옥과 다랭이 논이 좌우로 어린애 소꼽장난마냥 오종종하다. 다시 낮은 언덕이 시작되고 왼편 구릉에 소나무가 자리잡았고, 오른편은 제법 굴곡진 산세가 이어졌다. 세연정 입구 계곡 하류에 아침부터 할머니 세분이 무릎까지 몸빼를 걷어 올린 채 계류에서 채질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 지금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4

보길도의 부용동 원정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진다. 고산이 거처한던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 마주보이는 앞산 기슭에 자리잡은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그리고 놀이터라 할 세연정이다. 포구에서 가장 안쪽인 격자봉 아래에 자리잡은 고산의 생활터전인 낙서재는 말그대로 터만 남았다. 보길도에서 가장 좋은 터로 알려진 낙서재에는 동백과 황칠나무만 빼곡히 들어차 햇빛을 가렸다. 몇 개의 주춧돌이 땅위로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오는 여행객의 손길이 동백의 그루터기에 작은 돌탑으로 정감있게 남아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동천석실은 엄두가 안나 나는 곧장 세연정으로 나왔다. 청별 선착장에서 걸음으로 20분 거리인 부용초등학교 옆에 세연정(洗然亭)은 자리 잡았다. 계곡을 막아 인공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3

이튿날 아침 7시 나는 구계등에 다시 섰다. 밤에 비가 내렸는 지 모든 사물이 물기를 받아 싱그러워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을 굽어보고 있는 구릉의 소나무가 뚜렷하게 나의 망막 속으로 투영되었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수형인데. 그것은 다름아닌 단원의 실경산수화의 소나무였다. 그때 왼켠 구릉의 소나무 숲에서 자갈밭으로 한패의 촬영팀이 몰려 내려오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떠들어대는 불협화음. "야, 콘티 좀 찾아와" "상주복, 준비 됐어." "검정색 양복 입어야 돼요." 아! 지금 촬영중인 내용은 분명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이 틀림 없었다. 소설 속의 남주인공은 상중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의 추측은 정확했다. 10월말에 TV극장에 방영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2

나는 지체없이 택시를 불렀다. 정도리 구계등. 매년 문학사상사에서 1년간 지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에서 작품성의 우열을 가려 1편의 당선작과 대여섯 편의 우수작을 묶어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고 있다. '77년도 제1회 대상작으로서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이 선정된 이래 '96년은 20회를 맞아 90년대 한국문단을 이끌고 가는 젊은 작가 윤대녕에게 돌아갔다. 수상작은 '천지간'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정도리 구계등이다. 택시는 완도읍에서 서쪽으로 4㎞를 달려 해안에 접한 한적한 마을어귀에 나를 내려 놓았다. 나는 배낭을 어깨에 걸친 채 좌우로 몇 채 안되는 마을집들을 지나 바닷가로 나섰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한적하게 보이던 마을 정경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1

그런대로 소설을 접해 본 사람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어느 한 작가를 즉각 연상할 것이다. 그렇다. 6·70년대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김승옥의 한 작품명에서 이 글의 제목을 유추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소설이지만 이 글은 문학과는 거리가 먼 한 나그네가 배낭을 메고 남도 지방의 문화유산을 찾아 일주일 간 떠돈 발자취를 그린 어설픈 답사기다. 1997년은 '문화유산의 해'로 문화체육부가 지정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이 출간된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물론 배낭여행 목적지를 남도로 정한 이유는 앞의 책 1장을 차지하고 있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나의 뇌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미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