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7

영탑사를 벗어나 면천읍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퍼부었다. 그는 우두망찰 차안에서 부지런을 떠는 윈도우부러쉬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정대로라면 공주의 라마교 양식의 오층석탑이 있는 마곡사와 그동안 답사에서 당간지주만 보아왔던 그에게 온전한 철당간을 보여줄 갑사로 향해야 했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가기가 여간 저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5년전 잔잔한 파문을 남겼던 해미읍성을 떠올리고 운산으로 나와 647번 도로를 탔다. 개심사로 향하는 진입로를 버리고 내처 그는 해미면소재지에 있는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어느새 먹구름 사이로 쪽빛 하늘이 얼굴을 내밀면서 빗줄기가 주춤했다. 그때 날카로운 스피커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체육대회를 하는지 집단구호와 금속성 통제명령..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6

그는 어제 지나쳤던 면천읍 삼거리에서 면천주요소옆 폭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제법 이른 시각인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낮으막한 둔덕 사이에 자리잡은 아침이슬을 햇살에 반짝이는 벼포기를 바라보며 2㎞를 들어가자 영탑사 입구였다. 입구앞 주차장은 대형차도 주차할 수 있을만큼 공간이 넓었으나, 그 흔한 기념품가게 하나 없었다. 면천 웅산 자락에 기대고 있는 영탑사는 아주 작은 절로 한적하기 그지없다. 불계(佛界)로 들어가는 삼문(三門) 가운데 어느것 하나 없다. 경내 입구에 수령 400년된 느티나무 노거수가 성하의 신록을 자랑했다. 괴목 앞 영천(靈泉)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약수가 수량이 풍부한 물줄기를 내뿜었다. 그는 차안에서 빈물통을 가져와 물을 가득 채우고, 바리케이트 옆을 ..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5

그는 예산역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신흥여관 2층에서 여정을 긁적거렸다. 간헐적으로 밤기차의 기적이 들려왔다. 역사 너머로 국도를 오가는 차량행렬의 헤트라이트 불빛, 들녘의 벼포기는 역사의 가로등에 검은 실루엣으로 낮게 제 몸을 움추렸다. 저멀리 산자락 시골마을에서 불거져나오는 작은 불빛, 편안하고 정겨운 밤풍경이었다. 나그네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객창감으로 몸만 뒤채였다. 긴 여름해가 어느덧 서녘으로 기울어진 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친구에게 손전화를 넣었다. 친구의 낯익은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났다. 그는 안국사터를 벗어나 친구가 일하는 면천과 합덕의 중간에 위치한 태신목장을 향해 엘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운산으로 향하는 길을 가다 구룡에서 합덕길로 빠졌다. 얼마를 가니 면..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4

해발 495m인 덕숭산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정혜사를 거쳐 오르는 산길은 경사가 가팔랐다. 더군다나 한여름 햇살이 살갗을 후벼파듯 내리 쏟아붓자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했고, 잔등에 짊어진 배낭은 축 처졌다. 입으로 연신 더운 열기를 내뿜으며 어느덧 산정에 오르니 홍성일대가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북으로 가야산(해발 678m), 남으로 일월산(해발 394m), 동으로 용봉산(해발 369m), 서로 삼준산(해발 490m)이 덕숭산을 둘러쌓았다. 수덕사를 벗어나면서 그는 수덕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으막한 경사길을 내려오면 기념품가게와 음식점들이 양안에 즐비한데,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 초가지붕이 보였다. 실개천을 건너면 안마당이 훤히 보이는 수덕여관이었다. 그의 발길을 유혹한 것은 다름아닌 고암 이응..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3

보물 제101호인 오층석탑은 삼존불입상 앞에 한단계 낮은 돌축대에 자리잡았다. 몸돌은 1층만 남았는데 사방불 개념으로 동․서․북면에 부처 한분씩을 돋을새김하였고, 남면에 자물쇠를 채운 문비를 새긴 특이한 구성이었다. 2층부터 몸돌이 소실되어 지붕돌만 겹쳐 놓았는데 그것도 1개가 부족하여 4개였다. 고려시대 양식을 보여주는 오층석탑 옆 연꽃대좌 위에 올라앉은 부처가 돋을새김된 몸돌이 하나있어, 예전에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소근거리는 맑은 계곡옆 돌축대에 걸터앉았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정겹다. 담배를 꺼내 무는데 돌연 낯선 젊은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층석탑앞 돌축대 아래에 지붕까지 모양새를 갖춘 평상이 길게 늘어섰는데, 젊은이는 연신 삼존불입상에 기도..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2

방조제를 건너 당진읍으로 향하는 길에 송악면 기지시가 나온다. 기지시는 이름에 ‘시’가 들어가 있으나 행정적으로 리(里)에 지나지 않는 마을이지만 중요 무형문화재 75호로 지정된 ‘틀무시’ 또는 ‘틀못’이라고 부르는 마을행사 줄다리기가 전해온다. 윤년 음력 3월에 먼저 당제를 지내고 치러지는 이 줄다리기 대동제는 4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줄다리기는 기지시를 관통하는 국도 아랫마을이 ‘물아래’로 한편이 되고, 윗마을이 ‘물위’라 하여 여러 자연마을이 참가한다. 원줄의 지름이 1m가 넘고, 그 길이는 50 ~ 60m에 이른다. 여기에 곁줄을 끼워 당기는데 남녀노소 할것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공통이듯이 여기서도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들어, 항상 ‘물아래’ 마을이 이길수밖에 없다. 나..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

여행은 불편과 고생을 잃어버리기 않기 위해서 떠도는 움직임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잃지 않음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기억하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밖으로 나와야 한다. 여행은 안에서 바깥으로 나와 오래된 미래로 향하는 출발이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치열한 반성이다. - 안치운, 「옛길」, 학고재, 1999년, 15쪽 - 그는 어김없이 길을 떠났다. 답사길에 오르는 그는 묘한 감흥에 휩싸였다. 여행을 즐겨하던 그가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처음 답사라는 형식으로 길을 떠난 그곳 충남지역. 그때 그는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와 추사고택. 서산의 개심사, 해미읍성 그리고 청양의 칠갑산을 등반하고 하산길에 장곡사를 들렀다. 그동안 그의 발길은 서산의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 태안의 안..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3

박물관을 나오면서 안내실에 들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출간한 단원 김홍도 도록을 사들고, 유물 목록을 물으니 내년에 발간될 예정이란다. 성지에서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북장대에 오르니 노인 여남은 분이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누마루에 서니 눈아래에 진주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북장대에서 입구를 향해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진주중앙로터리클럽에서 창립 5주년 기념으로 ’96년 5월에 설치한 능소화 터널을 지나게 되어 있다.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줄기가 연주황색 꽃을 달고 아치형 터널을 기어 오른다. 내년이면 소담스런 꽃송이들이 터널 하늘을 뒤덮어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진주성지앞 대로에서 오른쪽으로 몇걸음 가다보면 일반 빌딩건물 2층에 태정민속박물관이 있다. 태정(苔井) 김창문 관장이 ..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2

메모노트를 접고 산천재를 나오는데 할머니 한분은 아예 도시락을 베고 오수에 빠져 들었다. 남명학연구소에 연이어 사리회관 경노당이 있는데 한낮부터 할머니들의 말다툼 소리가 요란하다. 산천재옆 가게에서 진주행 직행을 기다리는데, 길건너 맞은 편에 작은 비각이 보였다. 직감으로 송시열 신도비였다. 신도비앞 자투리 땅에 키작은 단풍나무와 회양목이 비좁은 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이 세운 신도비는 흙돌로 둘러싼 시골 뒷간만한 담장안에 보호되고 있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밝혔듯이 지리산은 남원, 구례, 하동, 함양, 산청을 품안에 안고 있다. 진주로의 발길은 나의 여정에서 끝 마무리로, 하동 쌍계사에 발길이 미치지 못한 아쉬움을 진주성지의 답사로 대신하려는 보상 욕구의 발로였는 지도 모르겠..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1

덕천서원과 큰길을 마주보고 덕천강가에 남명선생 이전부터 있었다는 세심정(洗心亭)이 자리 잡았다. 잔 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강변에는 드물게 상록수가 열지어 서 있어, 그 여백으로 보이는 정경이 풍치가 있었다. 답사여정중 만나는 정자마다 ‘출입금지’ 경고판이 여행객을 주눅들게 하지만 세심정은 누구나 마루에 오를 수 있다. 두폭의 마루를 잇댄 틈새가 벌어져 바닥이 내려다 보였다. 나는 세심정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메모노트를 펴 들었다. 마루에는 촌로들의 베개인 토막과 걸레, 파리채가 구석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땀을 들이며 나는 남명의 처사로서의 삶과 그 제자들의 국망의 기로에서 구국투쟁, 조선 역성혁명 세력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된 고려의 마지막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