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탑사를 벗어나 면천읍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퍼부었다. 그는 우두망찰 차안에서 부지런을 떠는 윈도우부러쉬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정대로라면 공주의 라마교 양식의 오층석탑이 있는 마곡사와 그동안 답사에서 당간지주만 보아왔던 그에게 온전한 철당간을 보여줄 갑사로 향해야 했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가기가 여간 저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5년전 잔잔한 파문을 남겼던 해미읍성을 떠올리고 운산으로 나와 647번 도로를 탔다.
개심사로 향하는 진입로를 버리고 내처 그는 해미면소재지에 있는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어느새 먹구름 사이로 쪽빛 하늘이 얼굴을 내밀면서 빗줄기가 주춤했다. 그때 날카로운 스피커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체육대회를 하는지 집단구호와 금속성 통제명령이 그의 발길을 잡아챘다. 어제의 과음으로 그는 몹시 피곤했다. 그는 좌석을 뒤로 밀치고 편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가물가물 졸음이 밀려왔다. 5년전 그가 해미 버스주차장에 내려섰다. 예산에서 하루를 묵고 직행버스로 도착한 것이다. 터미널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그는 주인아주머니께 개심사행 차편을 물었다. 입구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만 한단다. 난감해하는 그의 표정을 읽었는 지 옆탁자에서 순대국을 먹던 아저씨가 말을 건네왔다.
개심사는 ‘축협 한우개량사업소’를 거쳐야 갈수 있다. 이 목장은 총 638만평으로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했다. 드넓은 초원에 그림같은 벗꽃의 화사한 물결이니, 부드러운 구릉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를 보며 이국적인 풍경운운 하기에 그의 감성은 너무 메마른지도 몰랐다. 그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산을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몰골을 보면서 중, 고교 때 조금이라도 머리를 기르려 애를 쓰다 학생주임의 두발단속에 걸려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보기 흉하게 고속도로가 난 창피하고 민망스럽던 씁쓸한 기억부터 떠 올렸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숲과 나무를 신성시 했다. 단군설화에 등장하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 신단수였으며, 신라의 박혁거세 건국신화나 김알지 시조설화의 나정숲과 계림, 그리고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인 서낭당과 당산나무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자연이 지배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모든 것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의식마저 마비시켰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푸른 초원도 근대화 입안자의 입김이 서렸다. 축협 한우개량사업소는 운정장학재단의 삼화목장으로 출발했다. 당시 ‘김종필 목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부정축재 재산환수로 축협에 넘겨졌다. 목장의 울타리로 둘러쳐진 벗나무는 목장 조성당시 식재한 것으로 수령 30년이 된 성목이었다. 아이러니칼하게 서해안의 대표적 벗꽃 관광지로 주목을 받으면서 봄이면 40만의 인파가 몰려 들었다.
과수원과 저수지를 지나 개심사 주차장에 이르면 온몸의 땀구멍이 먼저 청신한 공기를 호흡했다. 홍송(紅松)이 바람결과 합창으로 길손을 청량한 솔내음으로 맞이했다. 콘크리트 회색빛 감성에 찌든 현대인에게 자연이 베푸는 경이로운 팡파레였다. 개심사(開心寺), 씁쓰레한 어릴적 기억을 지워버리는 개심사 초입 정경은 나그네의 마음을 자연스레 열어주었다. 경내로 들어서려면 일단 직사각형 연못에 걸쳐진 두뼘 폭의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연못에는 붉고 흰 수련이 한창이었다. 그늘속으로 비단잉어의 지느러미가 잔물결을 그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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