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해미면소재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정류장 매표소에 들러 덕산행 직행표를 끊었다. 이제 막 정오가 넘어선 시각, 시골마을의 버스가 도착하려면 시간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온천지구인 번화한 덕산으로 나가 청양의 칠갑산에 있는 장곡사를 찾는 동선(動線)을 그렸다. 정수리에서 직각으로 내리 쏟아붓는 강렬한 햇살을 피하려 그는 해미읍성 성벽위 누각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면사무소 건물이 눈아래 내려다보이고 상큼한 바람결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휘날렸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 이때 젊은이 두 명이 걸어오더니 그를 지나쳐 누각 기둥밑 돌쩌귀에 걸터앉았다. 억양이 강하고 말투가 빠른 것으로 보아 해미읍성을 찾은 여행객으로 보였다. 뒤이어 금발의 젊은 서양여자가 다가와 그들의 맞은편 기둥에 등을 기대고 주저 앉았다. 같은 일행으로 보였다. 한 청년이 빠른 입놀림으로 그녀에게 영어로 말을 건냈다. 그리고 성벽위 조약돌을 던지자 금발이 햇살같은 싱그런 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젊은이에게 말을 돌렸다. 서양여자는 도발적인 흰색의 핫팬츠 차림이었다. 그의 눈길이 머무른 그녀의 투명한 허벅지는 여름 햇살을 그대로 투과할 것만 같았다. 해미읍성 남문인 진남루 누각의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모든 사물을 흰색으로 표백시킬 것만 같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서 노닥거리던 어느 여름의 오후 정경이었다.
조선의 실학자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남을 이렇게 소개했다. '물산의 풍성함은 경상․전라도에 미치지 못하나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울뿐 아니라 서울의 남쪽에 있어 사대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또 풍속이 서울과 흡사하여 서울과 그리 다름이 없는 까닭에 가장 골라 살만한 곳이다.' 그는 가야산(해발 678m)을 둘러싼 예산, 서산, 홍성, 태안, 당진, 아산 즉 옛사람들이 내포(內浦)라 불렀던 지역을 답사처로 삼았다. 이 지역의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드넓은 들판을 내포평야라 불렀다. 택리지는 내포를 따로 소개했다. - 이곳의 토지는 비옥하고 평평하면서 넓다. 또한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또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그러나 바다에 가까운 곳에는 학질과 부스럼병이 많다. 산천이 비록 평평하고 잘 짜여 있으나 수려한 맛은 적고, 야트막한 구릉, 마른땅, 젖은 땅을 막론하고 모두 아름다우나 대자연의 기묘한 경치는 적다. -
그는 덕산으로 나와 홍성을 거쳐 청양으로 향했다. 길을 물어 대치터널 입구에서 내린 그는 옛 국도로 들어섰다. 잎넓은나무들이 울창하고 천장호가 피어내는 안개구름이 신비롭게 느껴지는 칠갑산은 해발이 고작 561m이었다. 하지만 위엄이 서렸고, 심산유곡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한치고개의 아름드리 벗나무들이 길손님을 마중나왔다. 그는 한치고개의 마루에 있는 칠갑산장 수돗가에서 생수통에 물을 채우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그런데 산장 앞마당의 근래 조성한 동상이 눈살에 거슬렸다. 일제시대 의병대장 면암
최익현선생의 동상은 당연하다치고, 도대체 ‘콩밭메는 아낙네’ 동상은 무엇인가. 주병선의 대중가요 ‘칠갑산’이 공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칠갑산의 명물이 바뀐 것이다. 한마디로 칠갑산은 눈을 치켜 뜨고봐도 콩밭은 없었다. 칠갑산은 충남의 알프스라고 불리워지는데 7명의 장수가 나올만한 명산이라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경사가 가파라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정상에 서면 광덕산, 오서산, 성주산이 한눈에 보이는 일망무제의 전경이 펼쳐졌다.(계속)
'배낭메고 길나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1 (0) | 2013.07.01 |
---|---|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0 (0) | 2013.06.07 |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8 (0) | 2013.05.31 |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7 (0) | 2013.05.29 |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6 (0) | 201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