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하산길에 큰 절은 아니지만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는 칠갑산의 보물 장곡사 경내로 들어섰다. 칠갑산 장곡사를 중심으로 겹겹이 사방에 뻗은 산줄기에 사자산의 운곡사, 무성산의 마곡사, 계봉산의 백곡사를 일러 사곡사(四谷寺)라 하는데 밀교적 교의를 바탕으로 경영된 사찰이라는 설이 전해왔다. 마곡사의 라마교 양식 오층석탑을 보면 일리가 있었다.
장곡사의 창건은 신라 문성왕12년(850)에 보조선사가 세웠는데 경내의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번창한 것으로 보였다. 장곡사는 특이하게 2채의 대웅전이 위,아래에 자리잡았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운학루와 보물 제181호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조선중기 건물인 하대웅전이 답사객의 시선을 끌었다. 단정한 맞배지붕의 법당은 보물 제337호인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모셨다. 산죽이 양안에 우거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상대웅전 구역이었다. 하대웅전과 같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보물 제162호인 상대웅전은 고려시대 기둥과 바닥전돌이 남아있다. 상대웅전은 불상 3분을 모셨으나, 원래 석불2구, 금불 3구가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5불이면 비로자나불이 본존불이고 노사나불,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밀교 계통의 불전이었다. 법당은 보물 제174호인 철조비로자나불과 광배의 아름다움과 대좌의 역사적 가치로 국보제58호로 지정된 철조약사불이 모셨다. 그는 서산에 꼬리만 걸친 저녁해를 바라보며 버스 정류장이 있는 장곡리까지 걸었다.
그는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뇌성에 놀라 눈을 떴다. 해미읍성 주차장이었다. 연이어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에 벼락이 거대한 틈새를 만들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그는 불현듯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시동을 힘차게 걸었다. 서산마애삼존불과 지척에 있으면서도 아직 그의 발길이 닿지못한 보원사터가 떠올랐다.
그는 오던길을 되돌아 운산 삼거리에서 해미쪽으로 가다가 가야주요소 앞에서 덕산방면 12번도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이 길은 서산마애삼존불을 서너번 찾은 그에게 무척
낯익은 길이었다. 길은 크게 인위적인 손길을 타지않아 자연스럽게 어릴적 향수를 맛볼 수 있었다. 길을 가다보면 고풍터널이 나왔다. 고속도로를 타면서 보호등이 훤하게 밝혀진 산을 뚫어 길을 낸 터널과 비교하면 수로 물도랑 크기의 시멘트 구조물은 터널이라 부르기도 우스웠다. 편도 1차선은 맞은편에 차가 보이면 경고음을 울려 통과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천장이 하도 낮아 승용차가 간신히 지날 수 있었다. 4륜구동이라면 초행자는 차지붕이 터널 천장에 닿지 않을까 마음을 조릴 정도였다. 그가 터널을 지나 마애삼존불의 위치를 어림짐작하는데 길옆 경사면에 흰색 승용차가 기우뚱 몸체가 쏠려 있었다. 통행차량이 없는 더군다나 빗줄기까지 흩날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중년여성과 초로의 남자가 우두망찰 서있다가 그의 차를 발견하고 두손을 내저었다. 그는 중년여성에게 휴대폰을 건냈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턴을 누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도로 건냈다. 통화지역의 신호세기를 표시하는 막대그래프가 없었다.
그는 언제 보아도 정겨운 고풍저수지 뚝에 올라섰다. 짙은 코발트빛 저수지 수면이 한여름에 땀을 흘린뒤 지하수로 등목을 하는듯한 시원함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곧이어 용현계곡을 끼고 굴절이 심한 도로를 가다보면 가게가 나타났다. 개울건너 산길을 오르면 세분의 부처가 ‘백제의 미소’를 머금은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이다. 얼마쯤 가다보면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에 필름등을 파는 외딴 가게집이 나타났다. 개울을 따라 길을 계속 따라가면 제법 넓은 지대에 사적 제361호인 보원사터가 길손을 맞아주었다. 다리를 건너 보원사로 향하는 계곡 양안은 말그대로 ‘먹자판 놀이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든들이 즐비했다. 망한절 보원사를 찾은 답사객들은 눈에 뜨이지 않는데, 날이 굿은데도 승용차들이 좁은 길을 연신 오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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