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5

대빈창 2013. 4. 8. 06:24

그는 예산역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신흥여관 2층에서 여정을 긁적거렸다. 간헐적으로 밤기차의 기적이 들려왔다. 역사 너머로 국도를 오가는 차량행렬의 헤트라이트 불빛, 들녘의 벼포기는 역사의 가로등에 검은 실루엣으로 낮게 제 몸을 움추렸다. 저멀리 산자락 시골마을에서 불거져나오는 작은 불빛, 편안하고 정겨운 밤풍경이었다. 나그네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객창감으로 몸만 뒤채였다.

긴 여름해가 어느덧 서녘으로 기울어진 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친구에게 손전화를 넣었다. 친구의 낯익은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났다. 그는 안국사터를 벗어나 친구가 일하는 면천과 합덕의 중간에 위치한 태신목장을 향해 엘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운산으로 향하는 길을 가다 구룡에서 합덕길로 빠졌다.

얼마를 가니 면천면소재지가 나타났다. 여기에 고려 충렬왕 16년(1290)에 축성된 면천읍성이 남아있다. 면천읍성에 ‘열하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학자 연암의 일화가 그의 둘째아들 박종채가 아버지의 언행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 전해진다. 연암이 면천군수로 있을때 읍성 동문에서 어느날 달을 구경하다가 밤늦게 돌아왔는데, 그날밤 귀신이 마을여자에게 붙었다. 여자는 귀신소리로 “나는 원래 객사에 있었는데, 성주가 부임해와 그 위엄에 동문으로 피했는데 성주가 이곳까지 오니 나는 갈데가 없으니 너한테 붙어 살아야겠다!” 그 여자는 발광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는데, 남편이 붙들어 관아로 데려왔다. 그때 관아에서, 연암이 큰 소리로 일을 논하자 여자는 지레 겁을 집어먹고 울부짖으며 달아났다. 그후 여자는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는 읍성답사보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20여분을 달리자 좀벌레가 먹은 것처럼 녹이 슨 흰색바탕에 검은 페인트로 쓴 ‘태신목장’이라는 입간판이 나타났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길을 따라 들어가자 길 양켠으로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졌다. 낡은 2층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친구는 서울대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둘은 흔한 말로 술에 있어서만큼 뽕짝이 맞아 떨어졌다. 그는 농장일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그 사람도 어림만 할 뿐이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43만평의 부지에 엔실리지용 옥수수가 대지를 뒤덮었고, 작업장은 옥수수 바다의 작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손전화로 친구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옥수수밭 사이의 좁은길로 들어섰다. 긴 여름해는 서산에 걸쳤고 바람 한점없는 대기는 후덥지근한 열기로 숨이 막혔다. 그는 얼마쯤 가다 차를 세우고 두팔을 휘저었다. 앞유리가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파리가 많았다. 한마디로 파리떼에 질릴 지경이었다. 에어컨이 고장이었다. 그는 창문을 닫는 곤욕을 치르고서야 친구와 상봉했다. 친구는 측창을 터놓은 하우스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송아지에게 포도당액을 주사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에 꼬리를 감추고서야 친구는 작업장을 벗어났다. 그들은 농장을 벗어나 인가가 드문 한적한 길을 달려 길가의 가든에서 예전처럼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친구는 소주를, 그는 맥주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결론은 술이었다. 우리는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농장안 친구의 사택으로 돌아왔다. 술잔을 기울이는데 어느새 처마에서 낙숫물돋는 소리가 들렸다. 술이 모자랐는 지 잠자리가 낯설어서 그랬는 지 이부자리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다 새벽녁에야 토끼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시커멓게 가라앉았고, 거기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어제 그의 답사일정을 들은 친구는 하늘을 쳐다보며 날씨걱정을 했다. 그는 가까운 영탑사를 찾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