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제 지나쳤던 면천읍 삼거리에서 면천주요소옆 폭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제법 이른 시각인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낮으막한 둔덕 사이에 자리잡은 아침이슬을 햇살에 반짝이는 벼포기를 바라보며 2㎞를 들어가자 영탑사 입구였다. 입구앞 주차장은 대형차도 주차할 수 있을만큼 공간이 넓었으나, 그 흔한 기념품가게 하나 없었다. 면천 웅산 자락에 기대고 있는 영탑사는 아주 작은 절로 한적하기 그지없다. 불계(佛界)로 들어가는 삼문(三門) 가운데 어느것 하나 없다.
경내 입구에 수령 400년된 느티나무 노거수가 성하의 신록을 자랑했다. 괴목 앞 영천(靈泉)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약수가 수량이 풍부한 물줄기를 내뿜었다. 그는 차안에서 빈물통을 가져와 물을 가득 채우고, 바리케이트 옆을 비껴 경내로 들어섰다. 정면으로 나그네를 맞는 법당 뒷산은 낮으막한 소나무숲이었고, 전각을 두팔로 감싸안을듯이 바싹 붙어있다. 아뿔사! 여기도 편액에 ‘영탑사’라고 적혔다. 휘발성 페인트 내가 채 가시지 않은 요즘 신축한 전각에서 볼 수 있는 편액이었다. 고려초까지 본존불을 모신 사찰 중심건물을 금당(金堂)이라 하였다. 그후 법당안에 모셔진 본존불의 성격에 따라 건물의 명칭이 편액에 나타났다. 본존불이 석가모니일 경우는 대웅전(大雄殿)이나 대웅보전, 아미타불일 때는 미타전(彌陀殿)이나 극락전, 무량수전으로 비로자나불일 때는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 비로전으로 미륵불일때 용화전이나 미륵전이라 했다. 아마 일주문이 소실된 연유로 어쩔 수 없이 절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눈물겨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름난 고찰을 주로 답사하였던 그의 눈에 대웅전의 원색 단청빛이 오히여 낯설었다. 새로 조성된 전각의 휘황찬란한 금색불상도 눈에 거슬렸다. 그는 칠층석탑과 약사전으로 향했다. 그때 적막을 깨뜨리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법당옆 조립식으로 지은 요사채 문앞에서 나이든 비구니가 그를 바라보며 건넨 말이었다. “예 절구경 왔습니다.” 비구니는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요사채로 들어갔다. 경내 입구에서 좌측으로 낮은 산등성이에 소담한 전각이 보였다. 유리보전이었다. 유형문화재
제111호인 마애불좌상이 모셔져 있어야 할텐데 문이 잠겨 있었다. 불투명한 비닐로 덧씌워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유리보전뒤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은 7층석탑은 충남 문화재자료 제216호로 보조국사가 오층석탑을 세운것을 고려말 무학대사가 지금 위치에 불상을 조각하고 오층탑을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얄굿게도 1911년 불자들이 2층을 더올려 7층으로 세웠다. 혹시 주변에 나뒹굴던 부재들을 제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른 시각이기도 하지만 워낙 작은절이라 찾는이가 없어 고요와 적막이 둥우리를 튼 절집을 나섰다. 들어올때 미처 눈에 뜨이지 않았던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길이 구부러지는 우측에 있는 연못가에 무성한 그늘을 드리웠다. 고찰 영탑사의 영화를 노거수들은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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