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0

오히려 빼어난 주변 풍광을 거느린 농월정 주변은 사람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농월정은 계곡 건너편 울창한 소나무숲에 바짝 등을 기댔고, 면적이 무려 1,000여평 남짓이나 된다는 너럭바위를 안마당으로 삼았다. 이 바위를 달바위(月淵岩)라 부른다. 이 넓은 반석위에서 한줄기로 흐르던 물줄기가 바위골을 따라 여러 줄기로 나뉘고, 다시 한줄기로 합수 되었다. 또한 급하게 소용돌이치는 물줄기가 바위에 작은 소와 폭포를 만들었다. 정자는 자연석위에 12개의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에 난간을 걸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추녀 네 귀에는 활주를 받쳤다. 이층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었는데, 마구 들이닥친 인파들로 인해 몰골이 형편없었다. 세월을 먹은 나무기둥이 점차 삭아 아랫부분을 베..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9

두눈을 부릅뜨고 발밑에 아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을 지나치면 정면으로 석등이 가로막는다. 보물 제35호로 지정된 높이 5m의 이 석등은 다른 절집에서는 볼 수 없는 불을 밝힐때 사용했다는 돌계단이 석등앞에 놓여 있다. 석등 왼켠 작은 연못의 비단잉어가 더위를 피해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운 그늘속으로 몸을 숨켰다. 보광전 앞 보물 제37호인 삼층석탑이 동서로 서 있는데 눈에 낯설지 않다.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내게는 상륜부가 몸돌에 비해 너무 커 가분수처럼 보였다. 보광사옆 공터는 예전에 우람하고 질좋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발굴을 한다고 베어내버려 휑뎅그렁하다. 사역을 따라 흙과 막돌을 개어 담장을 낮게 둘렀는데 위에는 기와를 얹었다...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8

평도마을을 향해 걸어 내려오는 나는 작열하는 햇살에 머리속이 허옇게 메말라 들어갔다. 잔등에 걸쳐진 배낭무게가 점점 힘겹게 조여드는데 때아닌 폭포수 물소리가 머리속을 파랗게 물들였다. 그 소리는 길아래 계곡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읫소에 고인 물이 천연보를 이룬 길쭉한 바위에 막힌 아랫소에 낙하하며 흰포말로 흩어졌다. 차시간이 충분하지라 나는 계곡에 내려섰다. 아랫소에서 소용돌이치며 거슬러 오르는 물살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윗소로 흘러드는 물줄기의 하나가 땅콩모양의 구멍을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줄기가 굽이치며 휘돌아드는 물결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사가 출간한 ‘자연사기행’을 눈동냥한 것중 강물이 깍아낸 신기한 조각작품이라는 부제를 단 가평천 돌개구멍..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7

이윽고 연곡사 매표소에 도착했다. 소선생 가족과 나는 작별을 해야만 했다. 뒷차창으로 채린이와 예린이가 앙증맞게도 고사리같은 손을 내게 흔들어 보였다. 관람료는 2,000원. 영수증 앞면에는 지리산 연봉위로 덮힌 운해가 사진으로 실려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연곡사의 상징인 동부도를 싣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에서는 연곡사를 - 부도중의 꽃, 부도중의 부도 -라고 소개했다. 탑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면, 부도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석물이다. 신라와 발해의 남북시대말기 선종이 출현하면서 조사와 선사들의 위상이 제고된다. 여기서 누구나 깨달으면 성불할 수 있다는 논리가 부도를 탄생시켰다. 현존 최고의 부도는 보물 제439호로 지정된 진전사터 도의선사 부도이다. ..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6

소선생이 먼저 내려가고 나는 돌바닥에 주저 앉았다. 지리산 연봉이 사사자삼층석탑을 굽어보고 있었고, 적막하고 고요한 산중에 계류 흘러가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각황전의 세월먹은 처마 끝머리가 눈앞에 내려다 보이고, 부드러운 아침햇살이 용틀임하는 가지를 하늘로 울울하게 치뻗은 소나무의 비늘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왠지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각황전앞 석등 주위에 있어야 할 소선생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계단밑으로 저멀리 네 가족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천왕문에 이르러서야 따라 잡았는데, 예린이가 ‘아빠! 무서워’하며 소선생 품속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의 등에 업힌 예린은 험상굿은 사천왕상의 모습이 무서웠던지 절집을 다 빠져 나와서도 겁먹은 표정으로 아빠곁을 떠날 줄..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5

요기를 해야 발걸음이 가볍다는 채린엄마의 지론에 따라 아침은 펄펄 끊인 죽으로 간단히 마치고 일행은 화엄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화엄사는 노고단으로 향하는 등산로 초입이라 아침부터 산을 오르려는 지 원색의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길을 나섰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차림으로 계곡길을 올랐다. 그런데 승용차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매표소 아가씨께 입장권을 끊으면서 물으니 불이문 밑에 화엄사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린의 아장 걸음으로 화엄사 입구까지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할수없이 소선생이 오던길을 되짚어 차를 끌고왔다. 꽤 먼거리였다. 얼마쯤 오르자 왼쪽 낮은언덕에 부도밭이 자리잡고 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철책을 두른 공간에 석종형 부..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4

이중환의 택리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전라도는 남원과 구례, 경상도는 성주와 진주를 꼽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길가나 낮은 구릉마다 붉은 꽃을 매단 배롱나무가 지천이다. 춘향터널을 지나자 남원시내였다. 구례로 넘어서면서 배롱나무꽃이 더욱 붉어진 것 같았다. 지역으로 더욱 남녘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오후 시간이 흐르면서 빛의 굴절에 따른 시각차이에서 오는 나의 착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놈 예린이가 멀미가 나는 지 엄마품에서 연신 칭얼거렸고, 채린이가 자꾸 앞좌석으로 넘어와 뒷좌석에 설치하는 유아용 안전놀이매트를 도로가 휴게소에서 마련했다. 둔중한 지리산의 산세가 점차 가까워오는데 채린은 연신 바다타령을 했다. 아마 채린이는 아빠가 여름휴가를 백부댁이 계신 울진 바닷가로 정한 것을 귀동냥한 모..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3

미륵사는 3탑 3금당 3회랑의 가람배치라는 일찍이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또한 절터에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을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1호 서석탑이 남아있다. 원래 9층석탑이었는데 무너져 내리는 탑의 붕괴를 방지한다고 일제시대(1915년)에 시멘트를 부어 서남쪽은 콘트리트 덩어리로 변했고, 현재는 동쪽면에 6층까지 원상이 남아있다. 원래는 탑의 기단부 한변의 길이가 10m이고, 상륜부까지 높이는 26m에 달하는 거대한 석탑이었다. 한편 탑의 네귀퉁이에는 탑을 수호하는 석인상이 있었는데, 현재는 한 분만이 오랜 풍상에 시달려 두루뭉실한 돌덩어리로 남아있어 장승의 선조로 추정되고 있다. 미륵사지에는 석탑과 돌장승의 원형이라는 두 석물이 너른 폐사지를 지키고 있어,..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2

그후 채린엄마는 전북익산 여산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선녀가 자식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듯이, 홀로 남겨진 소선생은 나뭇꾼처럼 관사생활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소선생은 어김없이 열차라는 동아줄을 타고 자신의 하늘인 전북 익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선생을 통해 들은 바로는 여전히 채린은 거기서도 요란한 웃음소리로 분위기를 왁자지껄하게 만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경건하고 엄숙해야 할 교회 분위기를 이끄는 제 어미를 가끔 난처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동생 예린은 어미닭 품을 벗어난 병아리의 호기심으로 언니를 따라 바깥세상에 맛을 들여 연일 세탁기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했다. 나는 녀석들의 독특한 표정을 떠올리며 열차에 올랐다. 4호차 특실로서 좌석번호는 3번으로 창쪽이었다. 말하자면 열차의 진행방향으로 맨..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

지리산은 한자로 智異山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서 전남, 전북, 경남 3개도의 남원, 구례, 하동, 함양, 산청 5개군에 걸쳐 그 둘레는 8백여리에 달하고, 1억3천만평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는 산세의 웅장함은 곧잘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된다. 장대한 산줄기는 15개의 계곡을 품어 크게 두 갈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어 하나는 경호강, 남강으로 낙동강에 흘러들고, 다른 하나는 섬진강을 만든다. 조선의 실학자 청화산인(靑華山人)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지리산을 "백두산의 큰 줄기가 다한 곳으로 두류산이라고도 했는데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 한라산을 영주, 지리산을 방장이라 하여 삼신산으로 불렀다."고 소개했다. 또한 "병란, 재화, 생사를 다스리는 신령스런 별인 태을성이 사는 곳으로 여러 신선들이 모여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