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를 해야 발걸음이 가볍다는 채린엄마의 지론에 따라 아침은 펄펄 끊인 죽으로 간단히 마치고 일행은 화엄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화엄사는 노고단으로 향하는 등산로 초입이라 아침부터 산을 오르려는 지 원색의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길을 나섰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차림으로 계곡길을 올랐다. 그런데 승용차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매표소 아가씨께 입장권을 끊으면서 물으니 불이문 밑에 화엄사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린의 아장 걸음으로 화엄사 입구까지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할수없이 소선생이 오던길을 되짚어 차를 끌고왔다. 꽤 먼거리였다. 얼마쯤 오르자 왼쪽 낮은언덕에 부도밭이 자리잡고 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철책을 두른 공간에 석종형 부도 8개와 1개의 비석이 서있다. 부도밭 맞은편 계곡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면 주차장이 있다. 공터 한켠에는 붉은 기운이 많이 가신 끝물 꽃을 매단 배롱나무가 무더기로 몰려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는 곧바로 직선코스라 생각되는 길을 올랐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를 지나치자 얕은 둔덕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길은 계곡에 가로막혀 있었다. 나는 오던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예린이가 아빠손을 잡고 올라오다 내가 손짖으로 다시 내려가자고 하자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쳤다. 뚱한 예린의 표정속에 숨겨진 고집일까. 그 나이때의 방향에 대한 관성법칙일까. 아니다. 그것은 아빠손을 놓고 싶지않은 예린이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불이문을 지나 오르는 계곡길은 들목의 번잡함을 씻어 주었다. 돌덩이를 타고 넘으면서 흰거품을 토해내는 계곡물은 투명했고, 거기다 수량도 풍부했다. 깊고 맑은 계곡물이 지리산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즈막한 돌담이 해탈문을 중심으로 연이어졌다. 금강문에는 왼쪽에 밀적금강, 보현동자가 오른쪽에 나라연금강, 문수동자가 시립했다. 천왕문에는 이땅 어느 절에서나 보게 마련인 사천왕상이 도솔천을 험한 얼굴로 수호하고 있었다.
화엄사는 대찰답게 많은 문화유산이 경내 여기저기에 자리 잡았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일직선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다. 금강문을 조금 지나 나이먹은 동백이 두서너 그루 서있고, 철책난간이 비좁다는 듯이 덩치 큰 비석이 일행을 맞았다. 안내판이 없는 지라 비문에 새겨진 한자에 나는 아둔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비문는 새로 끼어맞춘 듯 한데 귀부와 이수가 세월의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북등의 갑골무늬마다 푸른 이끼가 빼곡하다. 승려와 불자의 집회 장소인 보제루는 나무기둥 위에 서 있는데 마루밑에는 고른 크기로 켠 널판지가 쌓여 있었다. 그옆 종각의 널판벽을 담쟁이가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덮었다. 당간지주옆 전나무가 정확히 종각을 반으로 나눈 채 키자랑을 하였다.
보제루를 끼고돌면 마당을 두고 거대한 석축위에 대웅전과 각황전이 장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절집에서 항상 중심 건물은 대웅전인데 보물 제299호로 지정된 화엄사 대웅전은 오히려 왼쪽의 각황전의 위세에 눌려 있었다. 마당에는 동서로 오층석탑이 서있는데, 동탑은 단층기단에 장식없이 수수한 모습인데 반해 서탑에는 십이지상, 팔부중상, 사천왕상이 장식으로 조각되어 있어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이 탑에서는 ’95년 1층 몸돌에서 청자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뭉치가 발견되었는데, 화엄종찰로 보아 화엄경으로 유추되고 있다. 국보 제67호로 지정된 각황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전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면7칸, 측면 5칸짜리 중층 팔작지붕에 다포집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있다. 또한 그앞 석등은 높이가 6.4m로 세계에서 제일 크다. 각황전과 대웅전 사이에는 원통전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앞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층기단의 네 귀퉁이에 사자가 탑신을 받치고 있는 사자탑이 있다.
덩치 큰 석등을 올려다보는 3모녀를 방해하고 싶지않아 소선생과 나는 사사자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는 효대를 향해 각황전을 뒤로 돌아 올라갔다.계단을 오르는 왼켠으로는 동백이 울창하고 틈틈이 곧게 뻗은 대나무가 눈맛을 시원하게 만든다. 정방형의 터에 곱게 잔디를 입혔고, 에두른 철책난간을 기품있는 소나무가 빙둘러 서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이형석탑중 불국사의 다보탑과 쌍두마차격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에는 특이한 모양의 석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스님상이 석등의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데, 전하는 이야기는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효심깊은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삼층석탑의 상층기단에서 네마리의 사자에 둘러쌓여 있는 스님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가 된다. 그러기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자리잡고 있는 터를 효대(孝臺)라고 이름붙인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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