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어가는 오후의 햇살이지만 푹푹찌는 더위는 더듬이가 잘린 곤충처럼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담양 소쇄원 - 조선 중종때 양산보가 산수좋은 곳을 골라 마련한 주거공간으로 조경한 원정.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감각이 마비된 나는 무조건 담양이라는 지명에 집착하고 있었다. 무등산 남쪽 산비탈에 자리잡은 소쇄원. 광주터미널에서 담양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긴긴 여름해가 무등산 너머로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담양터미널. 소쇄원 입구 대나무밭의 청량함을 떠올리며 차편을 묻는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황담함 그 자체였다. 운주사를 찾는 나주버스터미널의 또다른 내가 거기에 있었다. 소쇄원행 차편은 광주 동구 농산물시장앞에서 125번 버스를 이용하란다. 수중에 남은 돈도 걱정이고, 소쇄원 주위에는 숙식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할 수없이 광주로 되돌아왔다. 광주시내는 어느덧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광주역에서 내일 11:00 발 영등포행 무궁화호를 예매하고 역 광장옆 여관에 여정을 풀었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서야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귀향하는 상행선 기차안에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얻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애정과 무계획적인 즉흥성이 빚어낸 여정의 시행착오를 떠올렸다. 다음 답사부터는 좀더 상세한 지리 정보와 사전 지식으로 계획적인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이번 여정내내 나의 손길을 탔던 '조선을 생각한다'을 펼쳤다. '자연과 역사는 예술을 낳는 어머니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 민족의 예술이 취해야 할 방향을 부여하고, 역사는 밟아야 할 경로를 정해 주었다.'
그때 승차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 논산역 - 나는 무턱대고 뛰어 내렸다. 역앞 광장 전화부스에서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택시를 불렀다. 그는 출타 중이었다. 큰키를 자랑하는 느티나무의 시원한 그늘아래 나무의자가 눈에 뜨였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타난 그는 하루일을 마무리하고 논산 시내로 나를 이끌었다. 여행 중 육식을 멀리 한 나의 허기진 속이 삼겹살을 잘도 받아 들였다. 어느덧 땅거미가 밀려 들었다. 그는 자기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계룡산 자락에 포근한 우듬지처럼 마을이 들어섰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영암 월출산을 스쳐 지나가며 공룡의 등뼈를 연상했는데, 계룡산은 그 거대한 동물이 어둠속에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계류와 마을 진입로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우리는 마을 구판장에서 맥주캔을 사들고 물이 불어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는 마을 쉼터의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술자리를 끝내고 며칠간의 여정으로 피곤한 나는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잠결에 누군가가 나의 잔등을 친다. 어렴풋이 들리는 그의 목소리 "이 좀 그만 갈아라."
간간이 빗줄기가 흩뿌렸다. 그는 구내까지 나를 배웅하고 뒤돌아섰다. 11월 그의 결혼식에서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나의 손에는 그가 어제 예매해 준 영등포행 09:14분발 통일호 열차표가 쥐어 있었다. 영등포역 하차. 나는 지체없이 지하통로로 연결된 대형서점으로 향했다. 한겨레신문사가 출간한 '이곳만은 지키자 상·하'. 이번 여행에서 받은 감흥도 컸지만, 무엇보다 문화유적지에 널려진 쓰레기가 잔영처럼 나의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땅끝행 카페리호 선상에서 보길도를 되돌아보며 느낀 '신열을 앓고 난 처녀'같은 이미지도 그 맥을 같이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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