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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연하문이 여기서부터 경내 임을 알렸다. 명기된 편액은 분명 두륜산대둔사(頭崙山大屯寺)로 새단장되어 있었다. 일제 때 頭崙山이 頭輪山으로 大屯寺가 大興寺로 잘못 표기되었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동안 대흥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을 위해 입장표에도 대둔사(대흥사)로 표기했다.
시인 고은은 '절을 찾아서'에서 대흥사를 소개하면서 부제로 - 선실에 배어있는 그윽한 차향기 -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글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추사와 소치. 초의는 추사의 도저한 지존과 소치의 고절, 초의의 시선다 경지가 한데 어우러져 해남 3절을 이룬 일이 있다. 김추사가 귀양간 제주도 남단에 허소치가 그의 향리 진도에서 건너간 일이 있고 초의선사는 그런 추사 소치와 더불어 두륜산 대흥사의 선실에서 당대의 높은 풍류를 누렸다. 시와 선. 다도의 초의와 시·서의 추사. 시·화의 소치라면 아무리 오만한 추사라 해도, 아무리 독거의 초의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상감마마가 애지중지 고애하는 화가라 하더라도 서로 만나서 차 한잔의 적광을 누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대둔사가는 길은 일세를 풍미한 선현들의 발자취를 음미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고, 표충사는 정조대왕,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또한 끊긴 차문화를 중흥한 초의선사의 일지암이 나그네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유선여관의 노랑이가 궁금하였다. 자기집 손님을 두륜봉과 일지암에 먼저 나서서 안내한다는 영리한 개. 노랑이가 보고싶어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전방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는 아가씨의 뒷모습이 눈에 익었다. 청바지와 간편한 보라색의 티셔츠에 륙색을 걸친 모습.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다름아닌 보길도 세연정에서 판석보를 찾던 아가씨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같이 했다. 아가씨는 미황사와 백양사를 둘러보고 마지막 일정으로 대둔사를 찾았고, 오늘 밤차로 부산으로 향한다고 했다.
그때 유선여관의 간판이 눈에 뜨였다. 나는 배낭을 내려 놓으며 주인 아주머니께 노랑이를 찾았다. 하지만 노랑이는 먼저 손님을 안내하느라 산에 올랐다고 했다. 나는 대둔사 경내를 가볍게 돌아볼 생각으로 문을 나섰다. 피안교 건너 토산품 매점에서 그녀는 캔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매점앞 평상에서 그녀와 캔맥주를 마시며 지나온 답사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적막한 산사를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비루먹은 몰골의 강아지가 피안교에 올라 선 자동차의 진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경내까지 승용차를 몰고 올라오는 한심한 부류의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강아지에게 대뜸 큰소리를 쳤다.
"이놈아! 거기 있으면 어떡해. 이리 오지 못해." 녀석은 나의 고함이 서운했는 지 흘끔흘끔 눈치를 보더니 뒷걸음질을 쳤다. 부도밭을 지나면 대둔사 전체 경역은 낮은 돌담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어진다. 대웅보전이 자리한 북원과 천불전이 있는 남원을 계류 금당천이 가로 질렀다. 또한 멀리 떨어진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와 대광명전 구역으로 구분된다. 나는 각 당우의 현판글씨와 대웅보전 돌계단의 사나운 표정의 돌사자와 천불전의 꽃창살 무늬 그리고 무염지에서 노니는 금붕어에 한눈을 팔다, 답사여행 길잡이 책대로 꼼꼼이 문화유산을 살피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는 그동안의 여정에서 쌓인 피로가 몰려 왔지만 혹시 노랑이가 돌아오지 않았을까 궁금해 그녀와 작별했다. 유선여관에 되돌아오니 피안교에서 자동차를 피하지못하고 얼쩡거리던 볼품없는 강아지가 안뜰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나의 주위를 자꾸 맴돌았다. 피안교에서의 미안함에 나는 배낭을 뒤졌다. 땅끝마을에서 어민후계자가 운영하는 기념품가게에서 구입한 양념 북어포를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다먹어치우고 바닥까지 핥는 녀석을 보며 나는 매점에서 캔맥주와 오징어를 사왔다.
유선여관 뒤뜰의 낮은 담장 너머가 바로 너부내 계곡이다. 녀석은 북어포에 잔뜩 맛이 들렸는 지 아니면 오징어 냄새에 구미가 동했는 지 꼬리를 치며 나의 뒤를 쫒아왔다. 나는 계류 한가운데 큼지막한 너럭바위를 술상으로 삼았다. 녀석도 아예 바위로 올라 내 곁에 뒷다리를 접고는 한 자리를 차지했다. 두륜산 계곡을 구비구비 치 내려온 너부내 계류는 바위를 맞닥드릴 때마다 아우성을 치며 흰거품을 토해냈다. 녀석은 뻔뻔스럽게도 나의 안주를 넙적넙적 삼키고 손에 든 것까지 달라고 연신 입맛을 다셨다. 지난 피서객들의 흔적이 계곡에 널렸다. 나는 빈캔과 쓰레기를 비닐봉투에 주워 담아 여관 뒷뜰 소각장에 버렸다. 그때 수돗가에서 나물을 다듬던 주인아줌마가 말을 건넸다.
"아니, 그동안 어디 있드랬어요. 웬 아가씨가 찾던데."
"......" 나는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며 대문이 건너다보이는 月室 - 나의 방을 찾으니, 댓돌위 등산화에 가지런히 접힌 손수건이 꽂혀 있었다. '참 순정한 아가씨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랑이 3세 - 비루먹은 몰골의 강아지와 여관 뒷뜰의 너부내 계곡에서 노닥거릴 동안 보길도 세연정 판석보 아가씨는 대둔사 답사를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면서 나를 보러 유선여관에 들른 것이다. 손수건은 사하촌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있는 등산안내도가 그려진 손수건이었다.(계속)
p. s 15여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적 손수건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여행이나 출장 일로 낯선 곳에서 며칠 묵을 일이 생기면 작은 배낭에 그 손수건을 필히 챙긴다. 묵은 정이 가는 물건이 누구나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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