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6

대빈창 2011. 7. 22. 05:48

 

보길도는 바다를 방황하는 안개에 아랫도리를 빼앗겼다. 나는 부용동 원정과 고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 368호로 지정된 세연정의 입구 안내판에는 고산의 정치적 역정이 소략하게 적혀있다. 여러차례 유배를 당하고,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우국충정으로 강화도로 향했으나, 이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에 칩거했다.

하지만 칩거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론 해남윤씨의 재력이 능히 섬 전체를 원정으로 꾸미는 거대공사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성 과정에서의 섬사람들의 노동력 징발과 그것을 보는 감정은... 또한 세연정에 배를 띄우고 미희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게 하고, 물 위에 비친 그녀들의 어여쁜 자태를 감상하며 정자 위로 악공을 올려 풍악을 울리기도 했다.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동떨어져 보길도라는 자신만의 낙원에서 풍류를 즐기며 칩거한 고산의 반대편에는 일평생을 처사로 살다간 남명 조식이 있다. '지리산 만큼이나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없던' 진정한 선비 남명. 그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산청 덕천강가에는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산천재(山天齋)가 자리잡고 있다. 퇴계와는 대조적으로 관직을 하사하는 임금의 청을 단호히 물리치고 일생을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남명. 그 제자들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 활동을 가열차게 전개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홍의장군 곽재우다.

투명하고 푸른 바다만이 드넓게 펼쳐지다가 불현듯 생각난듯 섬들이 카페리로 달겨 들었다.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섬 주위의 바다는 흰 부력이 삐곡히 들어섰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다름아닌 섬 사람들의 밭이었다. 땅끝이 가까워오면서 남해는 말 그대로 다도해였다. 펼쳐진 시야에는 크고 작은 생김새도 다양한 섬들이 층층이 겹쳐졌다. 바다 - 광대하다라는 연상을 비웃는 크고 넓은 담수호 같았다.

11시 10분 백두대간의 끝머리 사자봉이 바다에 발을 담    근 땅끝이 나타났다. 땅끝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호되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굴삭기가 해안가를 여기저지 들쑤셔놓았다. 거대 위락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중장비들이 뿜어내는 굉음이 한여름 햇살을 흩뿌렸다. 해풍과 파도에 씻긴 해안가 괴석들이 콘크리트 범벅을 뒤집어 쓴 채 폭양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배를 대는 선착장 주변만이 태고적 풍광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파도에 씻겨 기묘한 형상을 한 바위에 두서너 그루의 소나무가 억센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 소나무는 바다바람에 시달려서인 지 아니면 해송의 고유 특성인 지 솔담배의 도안처럼 밑가지가 없이 갓 쓴 선비처럼 꼭대기에 솔가지가 매달렸다.

땅끝에서 해남으로 넘어오는 길은 아름답다. 남도 특유의 여린 산세가 연이어지고 그 틈바구니마다 나타나는 푸른 들과 산자락에 조붓이 기대있는 살림집들 그리고 갑자기 차창으로 밀려드는 바다 물결. 백사장에 고삐 매인 한우들이 순한 눈망울을 두리번거리고...

오후 2시 30분 해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흥사행 직행에 올랐다. 15분 거리 - 입구 광장에 내렸다. 계류에 놓여진 다리너머 산자락에 숙박시설과 위락단지가 조성되었다.  매표소 공터에 마이크로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관람권 앞면에는 '두륜사 대둔사'라는 편액을 단 첫 관문인 연하문이 정면으로 서있다. 뒷면은 등산로 안내도와 대둔사 안내글이 이렇게 적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두륜산 대둔사(대흥사) - 대둔사(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에 진흥왕의 어머니 소지부인의 발원으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이래 7회에 걸쳐 중창을 거듭해오면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수행도량이다. 임진왜란때 구국의 대업을 이룬 서산대사의 유물과 진영을 봉안한 표충사가 있고,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며 차를 통하여 우리의 정신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스님의 유적 및 유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승 재4호인 두륜산에는 많은 종류의 잡목과 야생화가 자란다. 특히 온산에 피어나는 동백은 장관을 이룬다.

나는 '문화유산답사기 1'이 일러준대로 지체없이 배낭을 추스리고 대흥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길은 벗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동백 등이 울창한 터널을 이루었다. 너부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10리길은 오히려 나무가 내뿜는 청신한 기운과 소슬한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씻겨 주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