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7시 나는 구계등에 다시 섰다. 밤에 비가 내렸는 지 모든 사물이 물기를 받아 싱그러워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을 굽어보고 있는 구릉의 소나무가 뚜렷하게 나의 망막 속으로 투영되었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수형인데. 그것은 다름아닌 단원의 실경산수화의 소나무였다. 그때 왼켠 구릉의 소나무 숲에서 자갈밭으로 한패의 촬영팀이 몰려 내려오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떠들어대는 불협화음.
"야, 콘티 좀 찾아와"
"상주복, 준비 됐어."
"검정색 양복 입어야 돼요."
아! 지금 촬영중인 내용은 분명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이 틀림 없었다. 소설 속의 남주인공은 상중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의 추측은 정확했다. 10월말에 TV극장에 방영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원래 첫 목적지인 보길도를 향해 완도항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투명한 아크릴판에 반달 모양으로 뚫린 접수창에 돈을 내밀며 나는 매표원 아가씨께 목적지인 보길도를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 웬걸 거스름돈과 내게 건네진 승선표에는 난데없이 '완도 → 청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 저는 청별이 아니라 보길도를 가는데요."
"보길도에 배가 닿은 포구가 청별이예요." 하며 아가씨는 머리위 행선지 안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청별(보길도) - 10시발 완도발 보길도행 카페리호.
배가 완도항을 벗어나 기수를 남으로 돌리자 나는 전망이 훤히 트인 고물로 자리를 옮겨 배낭 속의 메모노트를 꺼냈다. 완도읍의 아파트 군락이 마치 바다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직선으로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을 실루엣처럼 우리나라 특유의 여린 곡선의 산세가 포근하게 안았다. 그 풍경을 씨앗을 감싼 과실의 육질처럼 뭉게구름이 다시 감쌌다. 하늘은 전형적인 초가을의 고려청자 비색이었다. 스크류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뭍의 도로처럼 일직선으로 포구로 이어지다 사그라들고, 엔진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점점이 떠있는 양식 그물을 물속으로 늘어뜨린 하얀 부력만이 젤리색 바다위에 떠있다. 두서너마리 갈매기가 낮게 뱃전을 선회했다.
카페리호는 소안도에 잠시 닻을 내린 뒤 노화도에서 승선객 대부분을 토해 놓았다. 노화도 포구. 재벌그룹이 낙도 벽지에 세운 사회복지시설의 흰 건물이 불쑥 눈에 들어왔다. 외벽을 희게 칠한 종합병원 건물은 TV 화면을 타는 광고보다 선명했다. 배가 기수를 돌리자 바로 코앞에 보길도의 수려한 산세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전 11시 20분이었다. 완도항여객터미널의 아가씨가 손짖으로 일러 준 보길도 청별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나는 민박집부터 정했다. 성수기 휴가철이 지난 보길도 선창에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얕으막한 언덕을 거슬러 오르는 고갯길 중턱에 우체국을 마주보고 있는 '보림민박'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넉넉이 바라볼 수있는 그리 높지않은 담장 때문이었다.
길거리에 연한 안마당 담장 밑에 가지런히 화분들이 줄지어 서있다. 남도 특유의 두터운 푸른잎을 매단 상록침엽수 분재가 대부분이었다. 살결고운 처녀의 매끈한 피부를 가진 배롱나무가 붉은 꽃 여러 송이를 앙증맞게 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조촐한 안마당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점심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는 자연 환경이나 풍토가 엇비슷하면 그들의 먹거리도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밥상에 올라 온 찬을 보고 알았다. 완도 구계등의 민박집과 거의 동일한 반찬 메뉴다. 새끼꽃게를 양념에 버무린 양념게장, 입안이 얼얼하게 매운 파김치 - 남도 들녘에는 파밭이 널려있다. 조개국의 시원한 국물이 입안에 오래 여운을 남겼다. 나는 처음 접하는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가며 주인 아낙네에게 묻는다. '우묵'이란다. 투명하고 굵은 실꾸러미 같았다. 나의 입맛은 낮이 선 새콤함에 이내 젓가락을 접었다. 식사를 마치고 세면장으로 향하는데 민박집 아낙네가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점심을 드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아낙네는 아예 우묵이 담긴 찬 그릇을 입으로 가져가 깨끗이 비워냈다. 그래도 고급찬이라고 객에게 먼저 내놓은 아낙네의 정성이 느껴졌다. 객이 물린 상으로 점심을 드는 민박집 아낙네의 순구한 마음씨.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는 구석방에 짐을 부렸다. 막돌과 흙으로 다져쌓은 얕으막한 담장 위에 암기와를 얹었다. 집의 벽도 흙벽돌로 쌓았고, 지붕도 기와를 얹었다. 창호지가 발린 미닫이. 나무틀로 엮은 창에 모기장으로 방충방을 덧댔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못한 창너머 뜰안은 쑥부쟁이가 제멋대로 키자랑을 하고 있었다. 계절은 한여름이 물러가고, 바람결에 가을 냄새가 묻어 있었지만 모기가 대낮에도 극성이었다. 나는 배낭 속의 전자모기향을 꺼냈다. 보길도는 여적 전압이 110V 였다. 주인 아낙네에게 110V용 전환용 잭을 빌려 전자모기향을 피워놓고 돗자리에 배를 깔고 메모노트를 긁적인다. 휘발성 향에 취한 동작이 굼뜬 모기를 맨손으로 잡았다. 금줄무늬가 배를 가로지른 짠물먹은 모기였다. 모기에 뜯기면 금방 엄지손톱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오수에 빠져 들고 픈 남해 섬의 한낮의 풍경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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