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대로 소설을 접해 본 사람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어느 한 작가를 즉각 연상할 것이다. 그렇다. 6·70년대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김승옥의 한 작품명에서 이 글의 제목을 유추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소설이지만 이 글은 문학과는 거리가 먼 한 나그네가 배낭을 메고 남도 지방의 문화유산을 찾아 일주일 간 떠돈 발자취를 그린 어설픈 답사기다.
1997년은 '문화유산의 해'로 문화체육부가 지정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이 출간된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물론 배낭여행 목적지를 남도로 정한 이유는 앞의 책 1장을 차지하고 있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나의 뇌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미술에 과문한 나로서는 전문적 지식의 턱없는 부족으로 여행 중 발길에 채인 흔적들을 엉성하게 간추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를 보고 느낀 감상보다는 자연히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의 편린을 단편적으로 나열할 수밖에 없는 나의 능력이 곧 이 글의 내용이다.
나는 일주일 간의 답사 여정에 필요한 도구와 옷가지 그리고 여행정보와 자투리 시간의 소일거리로 '조선을 생각한다'를 배낭 한 구석에 쟁였다. 글을 이어 나가는 나의 눈길은 메모노트와 모니터를 왕복한다. 오전 11시 13분 영등포발 호남선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식당칸의 점심 식사값이 생각보다 비싸다. 오후 3시 20분 광주역에 도착하기까지 고미술 전문서적 학고재에서 출간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을 생각한다'에 내내 눈길을 주었다. 문화유산의 해를 한해 앞두고 각 대중매체에서 경쟁적으로 싣는 여행정보란에서 화보로 본 보길도의 부용동 원정으로 향하는 나는 무엇보다도 권태로운 일상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광주시외뻐스터미널에서 16시에 출발하는 완도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거대한 공룡의 등뼈가 들쑥날쑥 그려졌다. 남도의 금강이라 불리울 정도로 자태가 빼어난 영암의 월출산이 비껴갔다. 버스는 작은 다리를 건넜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 했다. 차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물길은 분명 바다였다. 하지만 완도하면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데 그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여행을 끝낸 후에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다리는 남창교였다. 첫날부터 나의 착각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언제인가 나의 발길이 머물렀던 충남의 안면도가 떠 올랐다. 뒤이어 어째 섬으로 들어가는 뭍의 끄트머리가 왜 똑같이 '남창'일까. 안면도와 코를 맞댄 서산의 들머리도 남창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혹시 완도와 안면도를 남쪽으로 마주하고 있어 '南으로 난 窓'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나의 입력착오에서 빚어진 턱없는 연상이었다. 충남 서산은 남면 창기리가 안면도와 다리가 연결된 마을 이었다. 충남 서산 남면 창기리( 남-창), 전남 해남 남창. 어찌되었든 기억의 주름속에 한겹 겹쳐진 흑백영상을 출력하여 나름대로 무슨 연관성을 발견한 듯 골몰하고 있는 사이에 버스 앞창으로 불현듯 완도대교의 웅장한 자태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6시 35분 버스는 대교을 건너 25분쯤 달린 후 완도읍에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터미널옆 전화부스에서 완도항 여객터미널에 전화를 넣었다. "보길도행 막배는 5시 30분 입니다." 수화기에서 남도 사투리가 묻어 나오는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패였다. 서울에서부터 줄곧 윤선도와 부용동 원정을 머리속에 그리며 달려 왔건만... 곧 비라도 퍼 부울 것처럼 하늘은 회색빛 낯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잠자리를 알아 보기에도 낮이 긴 여름이라 어정쩡하다. 그때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나의 뇌리를 재빠르게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계속)
*사진은 검색엔진 구글에서 이미지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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