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8

대빈창 2011. 8. 3. 05:21

 

세월이 흐르면서 유선여관에도 변화가 있었다. 집의 구조와 방문 위 처마밑 작은 나무판자에 각각의 방이름을 매단 운치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한옥의 온돌방에 전기판넬을 깔고 모노륨을 덮었다. 필요 없어진 아궁이가 멍하니 입을 벌려 애처로웠으나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옛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나는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를 열어 놓은채 장판에 배를 깔고 메모노트를 긁적였다. 피워놓은 전자모기향의 향내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안뜰에는 정원수가 몇 그루 심겨졌다. 하지만 □ 집구조의 우리 선조들은 애써 피한 조경이다. 그것은 困의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큼직막한 나무대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 누렁이의 집 -

방앞 튓마루에 앉아 저녁으로 백반 밥상을 받는데 노랑이가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반가움에 등산용 에너지원으로 갈무리해 둔 육포를 입안에 넣어주었다. 노랑이 2세는 오히려 황구에 가까웠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포즈를 취한 원조 노랑이보다 애비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숏다리에 꼬리는 반쯤 치켜졌다. 그런대로 쫑긋한 두귀에 어미 모습이 남아 있었다. 녀석은 산에서 내려와 피곤한 지 안뜰에 길게 늘어졌다. 새끼는 내방 댓돌에 웅크리고 앉았다.

'동물의 왕국'에서 귀동냥한 사실에 의하면 모든 포유류는 어릴 때 형제끼리 장난치며 가족과의 정과 자기 종족의 습성을 익한다고 한다. 또한 먹이사냥을 비롯한 삶의 방식을 습득한다. 사자. 호랑이... 등. 2세인 어미보다도 못한 비루먹은 몰골의 노랑이 3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산열매를 안마당에 끌어 들였다. 심지어 손님 신발을 앞발로 당기며 입으로 뜯어 안뜰을 어지럽혔다. 댓가는 당연히 바깥어른의 호된 군밤으로 돌아와 노랑이는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았다.

베개를 높여 장판을 등에 대고 편한 자세로 책을 잡던 나는 무료함을 못 이기고 표고요리와 동동주를 들고 너부내 계곡으로 내려섰다. 날이 어두워져 뚜렷해진 계류의 흰거품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고적한 주흥을 즐기는 것도 어린 노랑이의 극성스런 안주 탐욕에 버티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안뜰을 마주보는 건너편 방에서 미닫이를 열고 손짖을 한다. 혼자 술잔을 대하는 내가 안스러워 보였는가 보다. 벌써 객창감도 한계가 온 것인가. 나는 밤늦게까지 옛 풍광을 자랑하는 유선여관의 운치에 젖어 술잔을 기울이다 문득 노랑이를 떠올렸다. 녀석은 맨먼저 산을 오르는 손님을 안내한다고 하지 않던가. 방으로 돌아오면서 취기로 몽롱한 나는 약간 휘청거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정경이 취기를 가볍게 여름 밤하늘로 날려 보냈다. 어디론가 꽁무니를 뺐던 새끼 노랑이가 댓돌에 놓인 나의 등산화에 앞발과 턱을 내려 놓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두륜산은 포근한 안개이불에 감싸였다. 피안교를 지나 부도밭을 왼켠으로 끼고 오르는 산길에 안개가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내 곁에는 노랑이 모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사행을 함께 한다. 이윽고 해탈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 어미 노랑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오던길을 내려갔다. 아! 어미는 제 어미에게 배운대로, 자기집 손님을 안내하던 대로 제 새끼에게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옥돌로 만든 천불전 내의 천불상과 표충사의 서산대산 유물전시관을 돌아본다. 주독이 가시지 않아 일지암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무염지의 금붕어에 하염없이 시선을 뺏앗겼는데 뭐가 그리 바쁜 지 새끼 노랑이가 그제서야 혀를 빼물고 나타났다. 

유선여관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배낭을 꾸렸다.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의 백두산(白頭山)을 이루고 그 백두대간의 끝이 맺은 산이라 하여 백두의 두(頭)와 곤륜의 륜(崙)을 따서 두륜산이라 이름한 곳. 그 곳을 벗어나는 10리길을 나는 노랑이 모녀와 함께 걷고 있다. 산중의 아침길은 어느새 서늘한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관리소가 보이자 어미는 오던길을 되돌렸다. 새끼 노랑이는 잠깐 곤혹스런 표정으로 갈피를 못 잡았으나 이내 어미에게 배운대로 나를 앞질러 산자락의 위락단지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매표소를 겸한 슈퍼에서 쥐포를 샀다. 녀석의 대견함에 대한 상품이었다.

"아니, 이 놈이 여기까지 또 왔네." 표를 건네주던 가게 아주머니가 녀석의 영리함이 신기한 지 환한 웃음을 띠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택시 한대가 광장으로 들어섰다. 나는 해남읍 행을 확인하고 급히 택시에 오라탔다. 쥐포에 정신이 팔려있던 새끼 노랑이가 그때서야 낌새를 차리고 멍한 시선으로 차안의 나를 바라 보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글을 이어가는 지금에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뒷차창으로 10리길 자기집 유선여관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녀석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15여년이 지난 지금 유선여관의 노랑이는 대를 이어가고 있을까. 할미와 어미가 가르쳐 준대로 손님들을 두륜산과 일지암으로 안내하고 있을까. 그때 비록 비루먹은 몰골이었지만 녀석은 두륜산 대둔사 답사객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이었듯이.(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