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은 벌써 화순 운주사를 향하고 있었다. 이 나라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국사의 전설이 스며있는 곳. 우리 문화의 정수 불교미술에서 그 정형성을 파괴한 거침없는 파격성. 천불천탑이 있었다는 신비한 절. 그러기에 화순 운주사는 많은 책에 소개되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을 들어도 돌베개의 답사여행의 길잡이, 새날의 한국의 불가사의, 대원사의 운주사, 학고재의 미륵 등.
그 기묘한 신비함이 나의 여정에 영향을 미쳤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계획적인 어수룩함은 - 그 조성년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기묘한 석불과 석탑군을 찾아가는 기대 이상의 흥분으로 판단력이 흐려진데 원인이 있었다. 여행 때마다 매번 겪는 준비성의 부족과 턱없는 촌놈 특유의 오기로 낭패를 당하면서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동한 것이다. 시간 낭비와 체력 소모에서 오는 지친 몸을 이끌고 목적지에 당도하나였으나, 문화유적에 대한 감상보다 천근만근 짖누르는 배낭 무게와 떼어 놓기도 힘든 등산화를 탓하며 도망치 듯 운주사 천불천탑을 빠져나오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운주사를 찾아가면서 기진맥진 지친 나의 모습이 망막 한구석에 뚜렷하게 비쳐진다. 지도 거리상 나주가 가깝다는 이유로 나는 나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얼마전까지 운행되던 운주사행 버스는 발이 묶여 있었다. 9월초라 하지만 남도의 한낮은 염천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도 하지 않던가. 그 식상한 속담을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아둔함을 추스리고 나는 차편을 물어 광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초록의 물결이 굽이치는 들판 외딴 곳에 나를 내려놓은 버스는 뒷꽁무니에 매연을 내뿜으며 종점을 향해 달아났다.
운주사 입구까지 500m를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배낭이 어깨를 조여오는 폭염 속의 행군이었다. 전남 서남부의 험준한 산줄기 가운데 운주사 천불천탑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골짜기 여기저지 석탑 12기와 석불 70여기가 제멋대로 자리를 잡았고, 새로 절집을 지을 건물부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골짜기 중심에 들어앉은 보물 제797호 석불감쌍배불좌상과 일명 호떡탑이라는 원형다층석탑. 운주사 석탑 탑신에서만 볼 수있는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7층석탑을 유심히 올려다본다. 정말 운주사의 불상들은 제멋대로 생겼다. 못난 불상들이 가족처럼 오손도손 바위절벽에 등을 기대었고, 돌무지 사이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란에 실패한 천민들이 용화세계를 꿈꾸며 신분해방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다는 미륵신앙은 아마 운주사 천불동 계곡에 널려있는 석탑과 석불의 정형을 벗어난 파격성에서 오는 민중적 이미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핵심화두인 거대한 와불 2구를 보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누워있던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설화를 간직한 운주사.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찰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 근거인 칠성석 - 신기하게도 이 7개의 돌의 위치와 크기, 두께가 현재 북두칠성의 위치나 밝기와 똑같이 비례한다. 못말리는 즉흥성으로 나는 화순 운주사의 상징 와불과 칠성석을 보질 못했다. 그 먼길을 일부러 찾아 갔으면서도.
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일주문 하나없는 일반적인 절집과는 분위기가 판이한 운주사를 벗어나, 민박할 곳이 있다는 버스 종점인 중장터를 향해 걸었다. 매달 보름에 승려들이 장을 벌여 필요한 물물을 교환한 장터. 중장터는 사방 어디서든 관을 만나지 않고도 갈 수 있었던 산길의 요지였다고 한다.
그때 지열로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지친 걸음으로 터벅터벅 걷는 나의 뇌리에 자연스럽게 담양 소쇄원의 시원스런 계류가 떠올랐다. 아마! 대둔사 너부내 계류의 시원한 감흥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한 마을어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던 두 어르신네들한테 담양행 차편을 여쭈니 고개를 흔드신다. 때마침 중장터를 되돌아나오는 광주행 시내버스에 무조건 몸을 실었다. 광주로 되돌아오면서 나는 운주사 답사의 미진함을 어느 책 귀퉁이에서 읽었던 문구를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비오는 날 운주사에 가서 천불천탑을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비를 맞고 있는 돌부처와 돌탑들을 보십시오. 어떤 한(恨)이 느껴질 겁니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공연히 가슴이 뭉클해져서 외면해 버리고 맙니다.'(계속)
'배낭메고 길나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 1 (0) | 2011.09.01 |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10 (0) | 2011.08.29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8 (0) | 2011.08.03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7 (0) | 2011.08.01 |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6 (0) | 201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