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5

대빈창 2013. 9. 2. 03:29

 

호텔에서 왕궁사원으로 향하면서, 일행은 새로운 태국여성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신성한 왕궁이니만치, 가이드는 태국인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발인 전용 관광버스는 가이드까지 합쳐 일행이 10명이었다. 태국은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을 짐칸에 싣는 고집을 피웠다. 우리는 급작스럽게 필요한 물품을 쉽게 손에 넣으려 짐가방은 빈 뒷좌석에 놓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우리의 의견을 묵살했다. 무슨 연유인 지 모르겠다. 새로 동행할 가이드의 이름은 '뿌'. 지리학을 전공하였고, 32살의 노처녀였다. 나는 '뿌'가 본명인 줄 알았는데, 예명이었다. 태국도 엣날 한국처럼 오래 살라는 이유로 일부러 개똥이같은 천박한 이름을 붙였다. 어릴적 주위 사람들이 붙인 예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뿌'는 우리말로 꽃게였다. 왕궁 가이드 경력이 4년인 '뿌'를 밴 어머니가 흔한 꽃게를 많이 먹어서 유래되었단다. 나는 '팜'에게도 그 뜻을 물었다. 우리말로 '애기'였다. 말 그대로 '팜'은 애기처럼 왜소한 체구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항상 입에 달고 다녔다.

고가를 지나면서 '뿌'가 태국의 교통 현안에 대해 설명했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요금을 내는데, 차량에 달린 바퀴가 4개 이하면 40바트, 바퀴가 6개 이상이면 60바트를 냈다. 또한 번호판 색깔은 3가지인데 빨강은 임시번호판, 노랑은 영업용, 하양은 자가용을 나타냈다. 우리가 찾아가는 왕궁사원은 국왕이 1941년 신궁으로 이사하면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현재는 국가의 공식 행사장으로서 외국 귀빈을 영접하거나, 왕족의 장례식장으로 사용됐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도로가 좁은 반면, 통행 차량수는 많아 언제나 교통체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태국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전무하여 길거리의 모든 차는 수입된 외제차였다. 상술이 밝은 일본인은 100개월 할부로 차를 태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운전석이 오른쪽으로 모든 차량이 좌측통행이었다. 무심결에 우리 일행들은 승차하려고 운전석 문을 열기가 일쑤였다.

'“뿌'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였고, 관광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왠만한 우리나라의 도시이름이나 위치, 지형, 이름난 산 등을 한국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자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그 열정적인 태도에서 우러나왔다. 왕궁 도로변은 밀림모자와 생수를 파는 사람들의 고함으로 아우성이었다. 방콕 시내의 도로에서 신호등을 보기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여기 신호등은 고장난 눈뜬 장님이었다. 태국 불교는 소승불교로 멀리서 바라 본 왕궁사원은 네팔 라싸의 포탈라궁과 흡사했다. 사원 진입로의 가로수는 “담마린” 나무였다. 잎은 미모사와 비슷하였고, 우산을 펼쳐놓은 형상이었다. 열매는 개미가 좋아하는데, 전통약재로 쓰인다고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