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7

대빈창 2013. 9. 6. 07:53

 

유람선 선장은 임금이 없다. 선장 부인이 손님들에게 쟈스민 꽃목걸이를 판매했다. 생계벌이의 합동작전. 쟈스민은 불교국가 태국에서 석가모니가 가장 신성시한 꽃이었다. 일행은 각자 꽃목걸이를 걸었다. 강변 풍경이 점차 도시에서 농촌으로 바뀌면서 수상가옥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룻배로 상품을 파는 수상시장. 태국 민중들의 신산스런 삶의 모습이었다. 수상시장의 나룻배도 부부가 운영했다. 남편은 노를 젓고 아내는 물건을 팔았다. 일행은 바나나 한묶음과 한국의 걸레빵 같은 빵을 한봉지 구입했다. 좌측 강변에 “관음낭랑정”이라는 사원이 나타났다. 가이드가 빵을 한움큼씩 강물에 던져 주었다. 팔뚝만한 메기과의 물고기가 말그대로 새까맣게 몰려들어 빵조각 다툼에 치열했다. 나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석모도행 카페리호를 쫒아오는 갈매기를 떠올렸다. 강변 사원에서 방생한 물고기로 사원주변 강을 떠나지 않고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빵조각으로 살아가는 물고기였다.

유람선은 새벽사원으로 오던 길을 뒤 돌아섰다. 새벽사원의 강건너로 왕궁사원이 보였다. 새벽사원 선착장에 내리면서 나는 꽃목걸이를 뒷좌석에 살그머니 내려 놓았다. 새벽사원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다. 삼층탑은 천국, 연옥, 지옥을 상징하는데 탑 밑단을 전설의 신 조각상이 바치고 있었다. 이 탑은 230여년전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로 조성했는데, 입구에 왕궁사원과 마찬가지로 수입된 중국산 석물들이 도열했다. 얼핏 스쳐가는 스님의 장삼은 주황색으로 낯설다. 탑모서리마다 검은 바지에 흰와이셔츠를 입은 문화재 지킴이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담벽에 붙은 경고문이었다. 함석판에 흰 페인트 칠을 하고, 붉은 글씨의 경고문은 한글이었다.

『이 성벽에 앉거나 서지 마십시오. 또한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 $20과 필름을 압수합니다』낯 뜨거운 이국의 오전시간이었다. '뿌'의 성의있고, 열성적인 가이드 안내를 받으며, 나는 속으로 울었다. 지리학을 전공하며 취업전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가이드를 꿈꾸었을 것이다. 감성적인 한국어의 구사는 능통했지만, 그녀의 외모는 태국의 가난한 민중의 딸을 떠 올리기에 어렵지 않았다. 작달막한 체구에 태국에서 오히려 보기힘든 뚱뚱한 몸매, 거기다 검은 피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한낮의 찌는듯한 더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은 두터운 장갑을 씌웠다. 오른 다리도 바닥을 끄는 절름발이였다. 그 절망적이고 참혹한 모습에서 신명나고 쾌활한 그녀를 보는 것은 차라리 괴로움이었다. 불교 신도로서 현세에 연연하지 않는 온순한 심성의 착한 아가씨였다. 그녀와 일행은 새벽사원앞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그녀의 오늘 가이드 보수는 50불이었다. 그 돈으로 그녀는 며칠간 가족의 생계를 꾸릴 것이다. 나는 일행중 마지막으로 버스계단에 발을 올려 놓으며 그녀 손에 만원을 집어 주었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차창으로 보도블록의 까무잡잡한 그녀가 유난히 흰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나의 뇌리에 서글픈 파장을 그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