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8

대빈창 2013. 10. 24. 07:48

 

 

일행은 점심을 방콕 시내에 자리잡은 한식집 “광한루”에서 가졌다. 찬은 노가리무침, 제육볶음, 김치, 시금치무침, 파김치, 오이무침, 계란말이, 상추쌈, 된장, 콩나물무침, 간장두부가 놓였고, 시레기국이 나왔다. 우리는 태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포만감을 만끽했다. 고국의 끼니에 부족하지 않은 찬에 열심히 젓가락을 가져가며 “안남미는 쉬 꺼지니깐...” 공기밥을 추가했다. 우리나라의 쌀은 단립형으로 자포니카 계통이지만, 태국쌀은 우리가 흔히 안남미로 부르는 장립형 인디카 계통이었다. 우리는 반주로 태국소주를 곁들였다. 태국소주는 마시는 방법이 양주와 비슷했다. 40°로 알콜도수가 높아, 큰잔에 소다와 얼음으로 희석해 마셨다. 값은 5불로 작은 병은 나폴레옹병처럼 생겼고 술은 투명하고 연한 갈색이었다. 눈에 익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뺐다. 2,000원에 3컵으로 다방형 커피맛이다. 담배를 피려 문을 밀치니, 열대의 습기많은 공기가 훅! 끼쳐들고, 식당앞 노점 장사치들이 1,000원짜리 10개 뭉치를 집어들고, 10,000원짜리로 교환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원을 바트로 교환할 때 큰돈일수록 환불율이 높았다

일행은 방콕에서 파타야로 향하는 고가도로에 올라섰다. 거리는 200㎞로, 시간은 2시간 30분내지 3시간이 소요되었다. 태국은 빈부 격차가 극심했다. 20%의 상류층과 중류층은 전무하고, 80%의 극빈층으로 구성되었다. 극단적으로 상류층은 벤츠를 10여대나 소유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우리가 타고있는 고가 고속도로 190㎞를 일본인들이 무상으로 건설했다. 조건이 20년동안 톨게이트 통과비를 거두어가는 민자유치였다. 고가 고속도로가 방콕시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였고 태국의 연간 관광객은 1,200만명이었다.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수도 방콕은 늪지를 메워 만든 도시로 지하철 건설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늪지라 수원은 풍부하지만 석회질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식수로 사용하기가 부적합했다. 반면 동양최고의 빌딩인 86층 바이욕타워가 있다. 겨울이 없는 남국으로 단열재가 필요없고, 태풍 피해도 전혀 없어 건축물의 단면을 얇고 길게 만들 수 있어 가능했다. 전봇대도 사각형이었다. 우리나라의 원형 전봇대보다 단가가 3배나 적게 들었다.

파타야로 접어드니, 늪지대를 메운 평지 방콕과 전혀 다른 풍광이 일행을 맞았다. 도로 양안을 얕은 야산이 줄지었고, 길섶에 억새로 보이는 풀이 백발을 바람결에 나부꼈다. 야생 야자수가 무리지은 둔덕에 팍스아메리카나의 첨병 코카·펩시콜라 광고판이 큰 덩치를 내밀었다. 야산은 온통 열대 상록수림이 울창하게 뒤덮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세를 믿는 불교 신도 태국 민중들의 현실적 강박성, 긴장감이 없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삶. 악머구리 끊듯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의 삶. 그때 불현듯 버스 앞창으로 무겁고 어두운 뭉게구름이 밀려 들었다. 스콜이 몰고오는 비바람이었다. 하지만 스콜은 버스를 저만치 앞질러 우리는 비를 볼 수 없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