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호텔 진입로에 자리잡은 슈퍼에서 태국소주와 맥주로 느끼한 남국 음식의 뒷맛을 입가심했다. 객창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행은 한 방에 모여 여행용 가방에 들고 온 소주팩을 개봉했다. 베란다에서 어두움이 엷어지는 인도양을 보았다. 오른편으로 열대 상록수림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왼편으로 바다 중간까지 길게 뻗은 방파제가 네스호의 괴물처럼 긴 몸뚱어리를 해안가 니켈 가로등빛에 몸을 뒤채었다. 여명이 터오면서 흰 뭉게구름이 점차 주황색으로 변했다. 일행은 호텔에 딸린 부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서양 메뉴 일색이라 젖가락이 허공에 머물렀다. 계란후라이, 햄 몇 조각. 연신 생수만 들이켰다. 이른 아침 수영장에 백인 몇 명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자외선 결핍에 시달리는 북유럽인 인지도 모르겠다. 백사장은 흰 몸뚱어리로 빼곡했다. 팜이 대형 목욕타올을 일행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호텔앞 해안가에서 보트로 산호섬으로 이동했다. 소요 시간은 30분. 얼마쯤 가자, 바다 한가운데 간이 선착장이 있었다. 보트의 속도에 바람을 탄 낙하산에 매달리는 놀이였다. 100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인도양의 젤리빛 바다. 점점이 떠있는 남국의 섬들.
산호섬. 작열하는 적도의 태양. 연푸른빛 바다. 파타야 해변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보트와 해안가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일광욕을 즐기는 손님을 유혹하는 쾌속정의 날랜 몸짖. 투명한 물밑에 어부가 내려놓은 어망처럼, 햇살이 그려 낸 금빛 무늬가 물결에 출렁거렸다. 산호섬은 한마디로 다국적 인종전시장이었다. 산자락이 길게 바다로 치뻗었고, 연이어진 방파제 끝 덩치 큰 유람선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무료한 남국의 햇살을 튕겨냈다. 바다빛은 백사장에서 수평선까지 투명, 엷은 연두, 푸른, 짙은 푸른색으로 농도를 더해갔다.
일행은 산호섬의 한 식당에서 파타야 해변에서 가져온 한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산호섬은 백사장의 모래가 죽은 산호초로 형성된데서 얻은 이름이었다. 호텔로 돌아 온 일행은 소금기를 샤워로 씻어내고, 중국사원 '염부원'으로 향했다. 정문의 무서운 표정의 사자상이 일행을 맞았다. 장구한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의 역대 문화유산 모조품이 전시되었다. 유명인물석상, 진시황묘, 진시황토용, 도자기, 전통중국화, 만리장성, 탱화, 고대청동향로 등. 흥미를 잃은 나의 관람 시간은 채 5분도 안 되었다.
중국판 '미니시암' 이었다. 염부원을 벗어나자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마애불이 나타났다. 천연의 거대한 바위 절벽에 마애불을 조성했다. 대륙의 거대하고, 웅장하고, 화려한 그들의 조형방식. 한마디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친근감이 아닌, 기를 죽이는 압도적인 위엄이 서렸다. 우리 산천 곳곳에 널려있는 자상한 미소를 은은히 내비치는 부조식 마애불에 익숙한 나의 눈에 공력과 정성을 무시한 21C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오만으로 보였다. 크기와 자본을 내세운 어설픈 미소가 바위절벽에 간단한 황금선으로 치장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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