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12

대빈창 2013. 11. 8. 07:48

 

 

알카쟈쇼 극장 앞마당. 공연을 마친 트랜스젠더 무희들이 관람객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이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공연 내용은 태국의 트렌스젠더들이 미국, 중국, 한국, 일본, 인도, 캐나다 등 주요 관광국들의 전통민속을 흉내 낸 것이었다. 당연히 모든 소리는 립싱크였다. 막간은 앞서 공연한 국가의 코믹쇼였는데, 우리나라는 부채춤이 선보였다. 다만 전통의상이 개량된 북한식 복장이었다. 좌석을 가득메운 각국 관람객들의 열띤 환호성. 가이드가 그네들의 고통스런 훈련과정, 사회적 편견을 설명했지만, 나는 공연시간 내내 2층 흡연실에서 애꿋은 담배만 피워댔다. 나도 그네들을 대하는 간단한 인식 “재수없는 놈”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관람객들의 환호성은 또다른 쇼비지니즘이 아니었을까? 무거워져 오는 머리를 버스좌석에 깊숙히 묻었다.

일어나자 마자 베란다로 나섰다. 파타야의 흔한 개 한마리가 뻔뻔스럽게 수영장 물을 몇 모금 들이키고 백사장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상팔자 개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다. 거리의 개들은 슬로비디오 화면처럼 아주 느리게 어슬렁거렸다. 아무 곳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누웠다. 여행의 매력 중 하나가 먹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곤욕스런 호텔의 아침식사에 또한번 맞딱뜨렸다. 나는 빵과 햄 3조각, 버터, 토마토 그리고 계란후라이를 포크로 뒤적거리며 고양이 식사를 했다. 호텔 부페 메뉴는 서양 취향에 맞추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국물 음식은 안 보였다. 생수로 목을 축일 수 밖에. 한 분은 식사때마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빵에 배인 향신료 냄새를 못 견뎌 아예 식사를 포기했다. 하지만 먹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소화제를 복용하면서 몇 가지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체크아웃하고, 로비로 내려서니 항아리에 눈에 익은 양란이 가득했다. 기린농장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는 덴파레 였다. 그렇다. 수상시장에서 목에 걸은 목걸이의 쟈스민 사이사이 덴파레 꽃이 숨어 있었다. 일행은 “Power Cobra"라는 상호를 단 코브라 농장에 도착했다. 정력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겨드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인기있을 법한 농장이었다. 사장도 한국인이었다. 그의 언술은 손님을 끄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코브라 습성 한가지 - 인도 거리에서 마술피리를 불면 바구니 속의 코브라가 목을 흔들면 춤을 추었다. 하지만 코브라가 노려보는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피리를 부는 사람은 연신 무릎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코브라의 시선을 유도했다.

'SRIRACHA TIGER ZOO' 호랑이쇼 공연장은 로마의 콜롯세움처럼 원형으로 철조망 울타리를 둘러쳤다. 외부에 계단좌석이 마련됐다. 어제 코끼리 쇼장처럼 동양인 관광객들이 몰려 들었다. 쇼장으로 향하는 우리에 기묘한 동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돼지와 호랑이, 거위와 악어, 낙타와 기린등. 모형동굴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전갈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하얀 옷을 걸치고, 검은 전갈 수십마리를 몸에 부착시킨 채 사진모델을 섰다. 흰옷과 검은 전갈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섬찟한 매력을 발산하는 미녀였다. 대형선풍기가 쏟아내는 바람에 뒷덜미가 시원했다. 공연장 출구의 중국인을 배려한 화장실 표기가 눈길을 끌었다. - 『洗手間』(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