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코끼리는 사뿐히 걷는다 - 6

대빈창 2013. 9. 4. 07:37

 

사원에서 일행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거대한 2개의 황금탑이었다. 작렬하는 햇살아래 탑은 번쩍이는 황금옷을 입고, 거대한 덩치로 관람객들을 압도했다. 한국 사찰의 탑은 대부분 화강암 석탑이나, 적은 수의 모전석탑 뿐이었다. 나는 석가모니의 육계를 연상시키는 황금탑의 이형성에 눈길을 빼앗겼다. 가까이 다가서니, 가로 세로 2cm 크기의 황금타일을 탑의 겉면에 입혔다. 도대체 얼마 만큼의 타일로 탑의 겉면을 장식하는 지 헤아려보는 자체가 까마득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한 황금탑은 인도양식이었다. 사원 건축물은 건축양식의 전시장이었다. 육골탑은 700여년전 스리랑카 양식으로 축조되었고, 그외 건물들은 캄보디아, 태국양식으로 한 사원에 4개국의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었다. '뿌'는 각 건축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도깨비 형상의 인물상을 한국의 사천왕상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나는 한마디 거들었다. 한국의 사찰에 들어서려면 필히 삼문 중의 하나인 천왕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안의 사천왕은 제석천의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불계 지킴이로 필히 4분의 사천왕이 언제나 시립한다. 그러므로 사는 四이므로, 여기 태국 왕궁사원의 두 분의 도깨비는 이천왕상이 될 것이다. '뿌'는 말귀를 알아들었는 지 환한 미소를 그렸다. 각 건축물마다 불교의 상징인 수련이 물이 담긴 절구통 모형의 화분에 떠 있었다. 사원안의 열기는 대단했다. 따갑게 내려쬐는 햇살은 하늘에서 퍼붓는 유리조각처럼 살갖을 후벼팠다.

에메랄드 사원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는 건축물은 왕궁사원에서 우리식으로 하면 '대웅전' 격에 해당하는 가장 장대한 우보솟을 가리켰다. 나는 거대한 파초 2그루가 수문장처럼 서있는 정문에 신발을 벗고, 에메랄드 사원을 천천히 관람했다. 220여년 전에 조성된 사원의 본존불인 에메랄드 불상은 허리 높이의 녹색 에메랄드 원석으로 불상을 조성하여 높은 금탑위에 안치했다. 좌우로 키 큰 여섯 분의 불상들이 우리나라의 협시불처럼 시립했고, 중간에 금탑을 세웠으며, 수미단은 갖가지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한국 사찰의 닫집처럼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사면에 벽화가 빼곡했다. 좌·우 벽에 창이 각각 9개씩 있는데, 창문 베란다에 부조된 불상이 금타일로 치장되었다. 바닥은 정사각형 문양을 기본으로 연속무늬를 이루었고, 갈색․노랑․파랑․녹색 4가지 색을 띠는 대리석으로 반들반들했다. 사원을 둘러싼 회랑은 보수공사중이었다. 일행은 더위를 피신하는 무리처럼 그늘진 흡연구역으로 몰려 들었다. 사원을 벗어나는데, 이국적 형상의 석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태국의 동물상은 거의 코끼리상이었다. 석물들은 우리나라 무덤을 지키는 무인상, 문신상과 사자상이 한 건물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옛날 태국에서는 중국에 상아등을 수출하고, 중국에서 석상들을 수입했다고 한다.

일행은 왕궁사원을 벗어나 도보로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방콕 거리는 한국의 삼륜차를 연상시키는 '뚜뚝이'가 손님을 실어나르는 운송수단으로 맹활약이었다. 일행은 노점에서 개당 1,000원을 주고, 야자수로 목을 축였다. 생각보다 빨대를 통해 입안으로 스며드는 투명한 과즙이 풍부했다. 천연주스맛이었다.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차오프라야강'은 우리말로 어머니강이라는 의미였다.  우리의 한강과 같은 태국인에게 소중한 강이었다. 우기의 흙탕물 강물은 물흐름이 빠르고, 물결이 거세었다. 강물에 무리에서 떨어진 수련들이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 선착장의 유람선은 한국의 70년대식 배처럼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다. 뱃전에 세워진 기둥에 낡은 지붕을 받쳤는데 시원한 강바람이 열기를 식혔다. 강변에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어머니강의 길이는 365km이고, 깊이는 평균 20m 이었다. 유람선은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