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나리분지였다. 천부에서 오르는 나리분지 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합승버스의 엔진 덜덜거리는 소음이 요란했다. 울릉도의 최고봉은 해발 986.7m의 성인봉이다. 500고지의 나리분지에 우데기를 두른 너와집과 투막집이 이방인의 눈길을 끌었다. 우데기는 울릉도에서 가옥의 바깥쪽에 처마 밑을 둘러싸고 있는 방설(防雪)을 위한 외벽을 가리켰다. 울릉도 선주민을 눈 속에서 보호해주었던 옛집은 이제 관광객의 눈길을 벗어났다. 너와 지붕에 가려졌던 파란 루핑이 드러나 보기에 추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는 칼데라 분화구가 무너져 내려 형성되었다. 나리분지는 정수기능을 갖춘 거대한 물탱크였다. 물탱크의 물은 봉래폭로로 쏟아졌다. 신산한 삶이었을까. 얼굴가득 주름진 할머니 한분이 한약재 마가목의 붉은 열매를 손질하고 있었다. 울릉도의 일주도로 완전 개통은 내년 3월로 미루어졌다. 저동 내수전에서 북면 섬목까지 4.75㎞ 미개설 구간의 저동터널(1.53㎞)과 천부터널(1.95㎞)의 난공사가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합승버스는 온 길을 되돌아 일행을 도동항에 내려주었다.
서해 민통선 섬에서 동해 망망대해의 울릉도를 찾은 하루 여정은 고달펐다. 청정지역 울릉도가 내세우는 먹거리인 홍합밥을 먹고 일찌감치 숙소에 몸을 뉘었다. 둘째 날. 그런대로 맛깔 난 백반이 아침이었다. 서둘러 해안 산책로에 들어섰다. 도동항에서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기암절벽과 해식동굴의 경연장으로 왕복 3시간이 소요되었다. 울릉도는 화산섬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경관을 구비하고 있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정상으로 섬의 형태가 타원형이다. 화산 분출이 오랜 시간 이루어졌고, 마그마가 천천히 해안으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이에 반해 울릉도의 화산 분출은 격렬하고 폭발적이었다. 바다에서 직각으로 치솟은 해안 절벽은 사람이 살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일정에 맞추느라 오르내림이 심한 산책로를 뛰다시피했다. 중간지점에서 뒤돌아섰다.
오전 일정은 육로관광 B코스였다. 봉래폭포 가는 길은 등산이었다. 차에서 내려 코가 닿을듯한 경사가 급한 산길이 꽤 길었다. 술내를 풍기는 노인네들이 힘든 발걸음을 질질끌며 기를 쓰고 폭포가는 길을 오르고 있었다. 폭포는 3단으로 구성되었다. 암석들 간의 강도 차에 의한 차별 침식으로 3단의 폭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을 모은 상수원 취수장이 나타났다. 백두산의 천지나 한라산의 백록담이나 울릉도의 성인봉은 모두 칼데라 화구였다. 천지나 백록담에 물이 있는 반면 성인봉에 떨어진 빗물은 나리분지로 스며들었다. 천연 필터로 걸러 모인 물이 탱크(?)에 저장되었다가 봉래폭포로 나타났다. 입심 좋은 버스기사 말에 의하면 울릉도는 ‘3無 5多의 섬’이다. 도둑, 공해, 뱀이 없다. 물, 미인, 돌, 바람, 향나무가 많다. 여기서 미인은 얼굴미인이 아닌 피부미인을 가리켰다. 향기가 백리나 간다는 섬백리향으로 피부를 가꾸어서 그렇단다. 내가 보기에 섬백리향이 아닌 ‘산삼 썩은 물’인 봉래폭포의 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니 피부가 백옥같이 깨끗할 수밖에. 내려오는 길에 천연에어컨인 ‘풍혈’에 들렀다. 아궁이 모양으로 파인 바위틈에서 찬바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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