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들이 깨어져 모래알이 되고
조개들은 그 빛의 알갱이로 집을 지어
파도에 마음을 실어 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던 섬
밥 묵어라
어둠이 석양 옷자락 뒤에 숨어
죄송하게 찾아오는 시간,
슬쩍 따라온 별이
가장 넓은 밤하늘을 배불리 빛내던
달빛 계곡 꿈을 꾸면
쪽배가 저보다 큰 텔레비전을 싣고
울 아버지, 하얗게 빛나는 이빨 앞장세워 돌아오듯
이제 다친 길을 어루만지며 그만 돌아와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여린 삐비꽃을 씹으며
애들 소리 사라진 언덕에 앉으면 석양은
머리가 하얀 사람들 애벌레처럼 담긴 마당에
관절염의 다리를 쉬다 가고
빚으로 산 황소가 무릎을 꺾으며
경운기 녹슬고 있는 묵전을 쳐다보는 곳
그대가 파도 소리에 안겨 젖을 빨던
그 작은 섬으로
p.s 전남 완도 출생 시인 김일영의 등단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전문이다. 이미지는 2024. 5. 10. 아침 7:30분경 인천 주문도 대빈창 해변의 삘기꽃이다. ‘삐비’는 삘기의 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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