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멧새의 절망

대빈창 2024. 5. 1. 07:00

 

바야흐로 절기는 곡식을 깨우는 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를 지나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는 입하立夏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년 열두달 대빈창 바위벼랑을 반환점으로 삼은 산책은 오늘도 여지없습니다. 날이 궂지 않은 이상 하루 세 번 식후 산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절기는 신록이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하루 산책에서 만나는 새의 숫자는 수십에서 수백 마리는 족히 될 것입니다.

계절별로 만나는 새들을 텃새와 철새를 불문하고 나열하면 노랑턱멧새, 종다리, 박새, 오목눈이, 곤줄박이, 동고비, 까치, 직박구리, 멧비둘기, 딱따구리, 흰뺨검둥오리, 소쩍새, 매, 괭이갈매기, 방울새, 까마귀, 딱새, 뻐꾸기, 중대백로, 물총새, 파랑새, 제비, 휘파람새, 찌르레기, 황로, 노랑부리백로, 후투티, 두루미, 청둥오리, 기러기, 가마우지,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 제대로 세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참새(Eurasian Tree Sparrow)와 멧새(Emberiza cioides)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합니다. 두 녀석 모두 참새목으로 과에서 갈라집니다. 모두 잡식성으로 주로 땅 위에서 풀씨가 먹지만 곤충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아침 8시경,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묵정밭의 고라니 방책용 폐그물에서 새의 날개짓 소리가 요란합니다. 불운한 녀석이 지옥에 빠져들었습니다. 홀쭉한 몸매로 보아 저는 멧새로 단정지었습니다. 묵정밭 울타리를 기어오르는 잡풀의 씨앗을 쫓다 녀석은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나의 블로그 dabinchang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세 번째 녀석입니다. 2020. 3. 『참새의 지옥』, 2022. 4. 『멧비둘기의 좌절』 그리고 2024. 5. 『멧새의 절망』입니다. 덩치가 자그마한 녀석을 옭아맨 그물을 조심스럽게 풀어냅니다. 녀석의 눈망울에 물기가 가득찬 것처럼 보였습니다. 천천히 오므린 손가락을 펼치자, 작은새는 날쌔게 옆밭 감나무 과수원으로 눈높이에서 수평으로 날아갔습니다. 좀 서운했습니다. 생명을 구해 준 은인한테 인사치레도 없다니,  크게 당혹스러웠던 녀석은 경황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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