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 아침 8시경 나는 혼자 투표장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우리 나이로 아흔 둘이셨다. 작년 초겨울 당신은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 가누기도 힘겨워하셨다. 어머니는 생전 처음 투표 기권을 하셨다. 서도면 투표 장소는 주민자치센터였다. 집에서 오솔길로 걸어 5분 거리였다. 나의 고향 김포에서 투표소는 한때 외벽을 맞댄 마을회관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가까운 투표소였다.
어머니의 고향은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로 행정구역은 삼산면이었다. 90년대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미법도는 전국에서 가장 빨리 투표를 완료했다. 스물댓명의 유권자들은 미리 줄 서있다가 6시 투표가 개시되자마자 바로 투표를 했다. 작은 섬은 선거철만 돌아오면 뉴스를 탔다. 지금은 배를 타고 본섬으로 나와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한다.
어머니가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것이 2008. 11. 2.이었다. 그동안 대선은 18대(2012.12), 19대(2017. 5), 20대(2022. 3). 총선은 19대(2012. 4), 20대 (2016.4), 21대(2020. 4). 6월 첫 번째 수요일 치러지는 지방자치 선거는 제6회(2014년), 제7회(2018년) 제8회(2022년)를 치르셨다. 그나마 2022년 지방자치 선거는 1인7투표제였다. 교육위원 투표가 없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글을 모르시는 당신은 소속정당도 없는 후보자 이름 석자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찍으란 말인가.
투표장에 가기 전에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물으셨다. 이번에는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고. 3남1녀 자식 중에 유일하게 사각모를 썼던 아들의 정치 성향을 믿으셨던 것일까. 당신은 언제인가 밥상머리에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니 말대로 찍었더니 30년동안 당선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구나.”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대선은 민중후보 백기완, 권영길, 심상정을 찍었다. 총선은 민중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당에 표를 던졌다. 이제 생물학적 인간의 3/4를 넘게 살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된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날까지 민중후보·진보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의 편에 설 것이다. 품격 있게 나이 먹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황해의 작은 외딴 섬의 사전투표소는 썰렁했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라면 섬은 초고령화 지역이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하立夏의 버드나무 (34) | 2024.05.07 |
---|---|
멧새의 절망 (50) | 2024.05.01 |
뒷집 새끼 고양이 - 44 (27) | 2024.04.08 |
가무락 맑은탕이 밥상에 오르려면 (32) | 2024.04.01 |
논 세 필지 (43)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