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는 천안삼거리의 능수버들이 가장 잘 알려졌다. 물가에 길게 늘어져 하늘거리는 수양버들은 아름다운 풍치로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버드나무는 40종류가 넘었다.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에 속하는 활엽수였다. 갯버들 같은 관목과 버드나무나 왕버들 같은 교목도 있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자라는 콩버들은 바닥을 기어, 키가 한 뼘도 넘지 못했다.
왕버들은 튼실하고 오래 살아서 정자나무로 남아 노거수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남 장성의 수백 년 묵은 왕버들은 귀류鬼柳라고 불렸다. 비가 오는 밤이면 나무는 빛을 냈다. 이는 인P 성분이 내는 빛으로 사람들은 귀신불로 귀신나무라고 불렀다. 오래 묵은 나무답게 전설이 전해 내려왔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나무 밑에 버리지 않으면 밤새 도망쳐도 나무 밑을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돌기만 했다. 나무 덕분에 도둑 없는 마을로 유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밑을 지날 때면 담뱃불도 끄고 담뱃대도 감추고 공손히 지나갔다.
산림학자 이유미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에서 발췌했다. 바야흐로 절기는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가 내일모레였다. 못자리에서 한창 모가 자라고, 텃밭의 마늘과 양파의 밑뿌리가 여물 때였다. 일몰시각은 19시 30분이었다. 서녘 하늘의 햇살이 역광으로 잡혔다. 저녁 산책에 나서, 삼거리 작은 숲가의 묵정논으로 향했다. 황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15년을 넘어섰다. 그 시절에도 묵정논은 습지 천이과정을 밟고 있었다.
산책 코스의 작은 숲은 참나무가 주종이고, 아까시와 소사나무, 소나무, 찔레, 청미래덩굴이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봉구산의 낮은 능선이 대빈창 해변으로 뻗으면서 이룬 골짜기가 연못골이었다. 모내기를 기다리는 애벌 써레질한 논에 물을 잡았다. 호미 하나로 산자락 밭을 부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묵정밭은 잡풀로 아우성이었다. 봉구산자락 밭들은 야생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연못골 계단식 논과 묵정논의 경계에 버드나무 두 그루가 제법 가지를 넓게 펼쳤다. 길가의 논 한 필지가 묵으면서 버드나무가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버드나무들은 묵정논의 습지 천이과정을 줄곧 지켜보았다.
주문도의 장마는 6월 하순에 시작되었다. 묵정논은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맹꽁이 아지트였다. 섬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맹꽁이 울음에 버드나무는 서로 귀를 막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논 한 필지가 묵정논이 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버드나무 두 그루가 논두렁에 뿌리를 내렸다. 사람들이 골짜기 계단식 논에 모내기를 하고 벼를 베고, 둠벙을 파 물을 모으는 세월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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