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가무락 맑은탕이 밥상에 오르려면

대빈창 2024. 4. 1. 07:00

 

아침부터 날씨가 고약했다. 섬의 봄 날씨는 변덕이 유달랐다. 강풍으로 풍랑이 심했다. 용케 아침 7시 주문도 느리항 1항차 삼보12호가 출항했다. 섬에 더불어 진군한 안개와 황사로 대기가 뿌옇다. 빗줄기마저 오락가락했다. 2항차 11시배는 결항되었다. 점심이 지나면서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몸에 밴 낮잠에서 깨어났다.

바지락 채취를 할지도 모르겠다. 감나무집 형수가 며칠 전부터 갯벌 일을 나간다는 소식을 어머니한테 들었다. 앞장술 해변으로 향했다.  ‘장술’은 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길어 파도를 막아 주는 언덕이라는 뜻이었다. 주문도 큰마을 진말의 앞뒤 해변의 이름이 앞장술, 뒷장술이었다. 마침 ‘박사장’이 제방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섬에서 평판이 좋은 양반이었다. 주문도에서 생산되는 상합을 거두어들이는 수집상이었다. 그는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 아침 첫배로 섬에 들어와 저녁배로 나가거나, 물때가 안 맞으면 하루를 묵기도 했다. 그가 섬에 들어올 때 마다 섬주민들이 부탁한 물품이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물었다. “종패는 작년에 뿌린 것인가요?”

그가 말했다. “아뇨, 몇 년 되었죠.”

첫 마디부터 어긋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삼보 12호 3항차가 느리항에서 뱃머리를 돌려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검색부터 했다. 방류하는 가무락 종패는 2년생으로 크기가 2-2.5cm였다. 2-3년 후에  8cm 이상 자라 성패로 성장하면 수확했다. 앞장술 갯벌에 25여 명의 사람들이 작업 중이었다. 1인당 하루 채취량 한도는 50㎏이었다. 채취자의 몫은 ㎏당 6,000원이었다. 초과량은 어촌계 기금으로 적립되었다. 채취기간은 3. 20- 30까지 열하루동안이었다.

가무락의 표준어는 모시조개로 대합과에 속하는 이매패류였다. 조개껍데기가 검다고 해서 가무락이라고 불렀다. 서해안에서 많이 나는 가무락은 맑은 탕이 일품이었다. 해감을 잘 시켜 한 소끔 끓이면 조갯살은 쫀득했고 국물은 담백했다. 나의 식성은 백합 탕보다 가무락 탕을 윗길로 쳐주었다. 내가 알기로 백합은 헤엄을 잘 치는 조개였고, 가무락은 갯벌에 몸을 숨기는 조개였다. 무릎까지 빠지며 찬바람이 살을 찢는 바닷가 갯일은 노가다 저리가라였다. 그 힘들고 고된 노동이 끝나가고 있었다.

앞장술 갯벌 건너편 길게 누운 섬은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였다. 왼쪽으로 석모도에서 주문도로 전기를 끌어오는 송전탑이 보였다. 이미지의 왼쪽에 치우친 작은 섬은 무인도 은염도였다. 물이 가장 많이 쓴 간조였다. 두 명의 아낙네가 그물망이 찢어져라 담긴 가무락을 제방의 탑차로 힘들게 옮기고 있었다. 주문도 가무락은 하루 노동에 지친 도시 가장의 저녁 밥상에서 따뜻한 김을 피워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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