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둘
지은이 : 김훈․박래부
펴낸곳 : 따뜻한손
「문학기행」은 언론 문학비평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신문 연재 때부터 장안의 화제를 모은 현장비평서였다. 당시 문화부장으로 연재를 기획했던 장영수는 말했다. “우리가 마침내 만들어냈던 이 나라의 문학지도―그것은 미숙한 미완성의 지도지만, 우리의 치열했던 작업에 대한 사적인 그리움을 뛰어넘는 지도다.” “우리에게 문학기행 길을 안내했던 시인․소설가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 박래부의 말이다. 그리고 세월은 다시 20년이 흘렀다. 한 분씩 손으로 꼽아보니 스물일곱 분이 고인이 되셨다.
서정주(1915-2000)의 『질마재 신화』(시집), 가난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결코 비천할 수 없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그린 산문시. 홍명희(1888-1968)의 『임꺽정』(대하소설), 부당한 사회제도와 모순된 현실에 반기를 치켜 든 역사의 이단자․저항인 임꺽정. 이청준(1939-2008)의 『당신들의 천국』(장편소설), 병원장의 소록도를 자신만의 낙원으로 만들려는 노동에 동원된 나환자들의 피눈물나는 인고의 세월. 최인훈(1936-2018)의 「광장」(중편소설), 우리 문학에서 최초로 가장 치열하게 남북분단의 이데올로기 문제에 정면도전한 소설. 이문구(1941-2003)의 『관촌수필』(연작소설), 관촌부락의 오랜 세월 쌓아온 삶의 내용, 삶의 질감과 동경이 형성하는 사람살이 모습.
천승세(1939-2020)의 「신궁」(중편소설), 절대적 가난과 객주의 횡포로, 이중으로 고통 받던 60년대의 어촌 풍경과 죽은 어부들의 고혼을 달래주던 굿의 세계. 신동엽(1930-1969)의 『금강』(장시), 동학농민전쟁―기미독립운동-4․19학생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중의 자기긍정적 힘에 의한 역사변혁. 이어령(1934-2022)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세이), 어린 시절의 고향에 바쳐진 헌사. 박재삼(1933-1997)의 『추억에서』(시집). 남해 봄바다의 아름다움과 슬픔과 가난과 죽음의 추억. 조세희(1941-2022)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연작소설). 사회 소외계층과 공장 노동자들이 물리적 폭력과 모략에 힘겹게 저항.
신경림(1936- )의 『남한강』(시집). 1910년대부터 광복직후까지 참혹한 시대를 살아간 남한강가 민중들의 고난과 항쟁을 노래. 조선작(1940- )의 『영자의 전성시대』(연작소설). 목욕탕 때밀이․창녀의 뿌리 뽑힌 최하층 계층 삶을 통한 위선적 사회에 대한 반항과 고발. 조정래(1943- )의 『태백산맥』(대하소설), 1948년 여순 반란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빨치산)의 비극. 김지하(1941-2022)의 『절, 그 언저리에서』(수묵시화집), 2년여 동안 절을 순례하며 시를 쓰고 자작 수묵화를 함께 실은. 전광용(1919-1988)의 「흑산도」(단편소설). 절해고도에서 숙명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
강은교(1945- )의 『붉은 강』(시집). 낙조가 지는 낙동강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서정인(1936- )의 「산」(단편소설), 운명 앞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않아 버릴 수밖에 없는 인간. 한수산(1946- )의 『안개 시정거리視程距離』(중편소설), 산업화와 물신주의에 찌들어가는 안개 도시의 젊은이들. 황지우(1952- )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시집),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광포함을 변혁시키려는 힘든 길. 송기원(1947- )의 「배소의 꽃」(단편소설),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해안마을 주민들의 갈등과 대립, 반목, 모함으로 얼룩진 세월.
김원우(1947- )의 『짐승의 시간』(장편소설), 10․26으로 유신통치가 끝난 1979년 8개월 동안의 서울 신촌 로터리를 오가던 한 연극학도의 삶과 내면풍경. 임철우(1954- )의 「봄날」(단편소설), 무구한 한 젊은이의 ‘5월 광주’의 친구 죽음에 대한 뼈아픈 참회록. 고정희(1948-1991)의 『이 시대의 아벨』(시집), 당당한 서정과 육성으로 시대의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자고 노래. 김용택(1948- )의 『섬진강』(시집),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적 삶의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 박노해(1957- )의 『노동의 새벽』(시집), 비인간적인 후발자본주의의 기계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절망을 끊어내려는 몸부림.
마지막은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의 표제작(233쪽)의 전문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 삼천리 화려 강산의 /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 우리도 우리들끼리 / 낄낄대면서 / 깔죽대면서 /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 한 세상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 길이 보전하세로 / 각각 자리에 앉는다. / 주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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