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37

임인년壬寅年 김장을 담그다.

임인년壬寅年 김장을 마친 텃밭이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올 마지막 농사는 김장 담그기와 마늘・양파 파종만 남았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운신할 수 있는 기력을 회복하셨다. 이제부터 살림살이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작은 형은 공장 사정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의 김장 날짜를 확정짓지 못해 불안해했다. 나는 우리끼리 김장을 하자고 용기를 내었다. 지난 주말은 온 섬의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느라 자식들이 고향을 찾았다. 나는 김장 준비로 삼일을 잡았다. 왕초보의 막무가내 김장담그기 도전이었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이것저것 천둥벌거숭이 막내아들을 이끌었다. 우선 쪽파 반 두둑을 뽑고, 짠지를 담갔다. 올해 배추가 보잘 것 없는 반면 무 농사는 섬에 정착한 이래 가장 대풍이었다. 어머니가 ..

텃밭을 부치다 2022.11.15

임인년壬寅年 추석秋夕의 텃밭

위 이미지는 임인년壬寅年 추석秋夕의 텃밭이다. 절기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는 백로白露를 지나,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으로 향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올해 한반도는 완연한 아열대 기후를 나타냈다. 현재까지 주문도의 총 강수량은 1,000mm를 넘어섰다. 1.1(신정)- 6.21.(하지)까지 강수량은 고작 106mm 이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아열대 기후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정수리를 벗기는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다, 느닷없이 퍼붓는 폭우는 열대성 소나기 스콜을 연상시켰다. 작물 파종기의 극심한 가뭄으로 발아가 늦되거나, 겨우 싹을 틔운 작물도 갈증에 허덕이다 시들었다. 기특하게 고개를 내밀며 목숨을 부지하던 작물을 폭..

텃밭을 부치다 2022.09.13

임인년壬寅年 춘분春分의 텃밭

위 이미지는 임인년壬寅年 춘분春分의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입니다. 춘분은 24절기에서 네 번째로 경칩驚蟄과 청명淸明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입니다. 봄기운이 듬뿍 들어 있는 들나물을 캐어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습니다. 농사에서 초벌 경운을 하고,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바쁜 철입니다. 봄바람이 세차고 한번은 꽃샘추위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사흘 전, 먼동이 터오면서 이른 아침을 먹고 텃밭으로 나섰습니다. 진돗개 트기 느리가 집으로 쓰는 창고 마지막 칸 앞 두 두둑을 퇴비 세 포대를 뿌리고 삽으로 일렀습니다.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뭉친 흙을 곱게 다졌습니다. 땅콩파종용 투명..

텃밭을 부치다 2022.03.23

신축년辛丑年 한로寒露의 텃밭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17번째 날입니다. 찰 한寒, 이슬 로露를 쓰듯이 대기가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서리로 변해가는 계절입니다.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로 기온이 더 낮아지기 전에 농촌은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가을산의 단풍은 짙어지고, 겨울 철새 기러기가 날아오는 때입니다. 위 이미지는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한로의 텃밭’입니다. 우리 집은 대빈창 해변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앉았습니다. 옥상에서 바다를 향해 내려다보면 텃밭의 위쪽은 봉구산자락에 앉은 우리집과 맞닿았습니다. 바깥쪽은 아랫집 텃밭과 석축 벼랑으로 경계 지었습니다. 왼편은 고갯길이고, 오른편은 유실수 몇 그루가 심겨진 묵정밭과 이어졌습니다. 하숫물 흐르는 도랑이 묵정밭과 경계 지었습니다. 묵은 감나무가 텃밭..

텃밭을 부치다 2021.10.12

신축년辛丑年 청명淸明의 텃밭

신축년辛丑年의 청명淸明은 4. 4. 日요일이었습니다.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 입니다. 청명은 봄이 짙어지고, 하늘이 맑아지는 시절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 년 중 날이 가장 맑은 때입니다. 농가는 청명을 기하여 봄 일을 시작합니다. 논밭 둑을 가래질로 손질하며 논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영농 기계화된 요즘은 해토로 무너진 논두렁을 논두렁조성기로 손을 봅니다. 다랑구지 대빈창 들녘은 논 한 구석을 쓸리고 평평하게 다듬어 마른 못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퍼부었습니다. 논에 물이 허옇게 괴었습니다. 지난주에 30mm, 이번 주에 45mm의 봄비가 쏟아졌습니다. 애를 쓴 보람도 없이 마른(?) 못자리가 빗물로 흥건합니다. 농부들은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봄비..

텃밭을 부치다 2021.04.05

경자년庚子年 입동立冬의 텃밭

입동(立冬)은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로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담그는 시기입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때입니다. 이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합니다. 2019년(己亥年)은 입동 추위가 있었지만 한 겨우내 눈다운 눈 없이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2020년(庚子年) 입동은 포근한 하루였습니다. 위 이미지는 아침 산책을 다녀와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 전경입니다. 사나흘 전 작은형이 섬에 들어왔습니다. 반듯하게 새로 일군 두둑은 작은형의 꼼꼼한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오른편 가장자리 두 두둑은 마늘을 심었습니다. 동력기계가 없는 우리집은 순전히 사람 힘으로 매년 두둑을 삽과 쇠스랑으로 새로 만듭니다. 살균제를 푼 물에 마늘 종구를 한 시간여 담..

텃밭을 부치다 2020.11.09

경자년庚子年 망종芒種의 텃밭

송홧가루 날리는 /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 눈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이고 / 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윤사월」의 전문입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망종(芒種)은 윤사월 열나흘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윤사월이 시작되며 소나무가 날리는 송홧가루는 눈에 뜨이는 모든 사물을 노란색으로 물들였습니다. 봄비가 잦아, 고인 물웅덩이마다 기름띠처럼 송홧가루가 금빛 물살을 이루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망종의 이른 아침 텃밭 전경입니다. 자욱한 안개가 외딴섬의 봄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흘 동안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나날이었습니다. 텃밭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느리가 웅크려 앉은 채 올려다보았습니다. 느리는 세 살입니다. ..

텃밭을 부치다 2020.06.08

경자년庚子年 우수雨水의 텃밭

위 이미지는 2020년 경자년(庚子年) 우수(雨水) 전날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 전경입니다. 우수(雨水)는 24절기 중 2번째 날로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우수'라는 말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강의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우수가 돌아오면 우리나라 농부들은 논둑과 밭두렁을 태워 풀숲에서 겨울을 지낸 해충을 없앴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옛 얘기가 되었습니다. 산불방지 지킴이가 수시로 작은 섬을 돌며,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작년 가을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며 잘라 넣은 짚단을, 날이 추워지기 전에 트랙터로 땅 속에 묻었습니다. 이를 땅 힘을 좋게 하는 가을갈이라 일컫습니다. 올겨울은 눈다운 눈 한번 내리지 않았습니다. 때 ..

텃밭을 부치다 2020.02.24

기해년己亥年 소서小暑의 텃밭

위 이미지는 소서(少暑)의 먼동이 터오면서 어머니가 텃밭작물의 밤새 안녕을 보살피고 계십니다. 언덕길의 텃밭 진입로에 묻은 마디호박에서 애호박 두 개를 따 품에 안으셨습니다. 소서는 24절기의 열한째로, 본격적으로 더위가 몰려오고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 무덥습니다. 구석진 창고 한 칸의 집 앞 시멘트 바닥에 느리가 널브러져 늦잠에 빠졌습니다. “밤에 노루 잘 지켜, 노루가 다 뜯어먹잖아” 열어 놓은 창문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잡종 진돗개 느리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올해 유달리 고라니가 극성입니다. 언덕길 건너편 앞산에서 밤이면 내려와 고추, 땅콩, 콩잎에 입을 댔습니다. 덩치가 커 목소리가 우렁찬 느리의 짖는 소리가 연일 어두운 허공을 갈랐습니다. 고라니가 목줄에 매인 느리가 어쩔 수 없다는..

텃밭을 부치다 2019.07.08

무술년戊戌年, 김장을 부치다.

2008. 11. 2. 김포 한들고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 느리로 이사 온 날입니다. 어머니는 김포 텃밭의 마늘 종구를 이삿짐 속에 갈무리 하셨습니다. 김장 채소 부치는 시기를 놓쳤습니다. 두 두둑에 늦은 마늘을 심은 것이 주문도의 첫 텃밭 농사였습니다. 다음해부터 어머니는 네 두둑에 김장을 부치셨습니다. 배추가 두 두둑, 무가 한 두둑, 재래종 갓과 순무를 한 두둑에 심었습니다. 우리집 텃밭은 가장자리 자투리를 빼고 열 두둑입니다. 십년 째 두둑의 숫자와 폭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텃밭 농사는 예술적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매년 심는 작물의 종류는 변하지 않았으나, 두둑은 고정된 적이 없습니다. 김장 채소를 부친 네 두둑의 오른쪽은 땅콩 두 두둑. 왼쪽은 청양고추와 서리태, 그리고 두 두둑의..

텃밭을 부치다 2018.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