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17번째 날입니다. 찰 한寒, 이슬 로露를 쓰듯이 대기가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서리로 변해가는 계절입니다.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로 기온이 더 낮아지기 전에 농촌은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가을산의 단풍은 짙어지고, 겨울 철새 기러기가 날아오는 때입니다.
위 이미지는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한로의 텃밭’입니다. 우리 집은 대빈창 해변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앉았습니다. 옥상에서 바다를 향해 내려다보면 텃밭의 위쪽은 봉구산자락에 앉은 우리집과 맞닿았습니다. 바깥쪽은 아랫집 텃밭과 석축 벼랑으로 경계 지었습니다. 왼편은 고갯길이고, 오른편은 유실수 몇 그루가 심겨진 묵정밭과 이어졌습니다.
하숫물 흐르는 도랑이 묵정밭과 경계 지었습니다. 묵은 감나무가 텃밭 끝머리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전 주인이 아랫집 할머니네서 이식한 감나무로 항상 후줄근한 몰골입니다. 땅속이 암반이라 제대로 뿌리를 뻗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람꼬지로 매양 뿌리가 흔들렸습니다. 올해는 그나마 잎사귀를 반나마 매달았습니다. 사오년전 산림조합에서 식목일 사다 심은 대추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미친 대추나무인 지 모르겠습니다.
마당에서 텃밭으로 내려서는 계단 좌측 세 그루의 나무가 석축에 바투 붙었습니다. 수목장으로 모신 아버지의 모과나무와 누이의 매실나무, 그리고 이년 전 새로 심은 대추나무입니다. 올해 텃밭의 주종 작물은 서리태입니다. 어머니는 매년 된장 콩을 한두 두둑 심었습니다.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갔습니다. 뒷집 형수한테 종자를 얻은 서리태를 어머니는 마음껏 서너 두둑에 심었습니다. 서리태를 갈아 넣은 국물에 말은 콩국수에 입맛들인 막내에 대한 배려입니다. 김장 무가 두 두둑, 배추가 한 두둑, 그리고 땅콩 두 두둑은 수확을 마쳤습니다. 열무와 갓이 반 두둑씩, 청양고추가 한 두둑을 차지했습니다.
돌려짓기·사이짓기·이어짓기의 마술사 어머니는 땅콩이 심겨졌던 빈 두둑에 마늘과 양파를 염두에 계시겠지요. 돌산갓의 잎줄기가 벌써 하나둘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했습니다. 갓은 배추와 무보다 한 달 정도 이르게 수확해서 김치를 담가야 합니다. 이삼년동안 돌산갓 재배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입동 무렵 김장시기 무·배추와 함께 수확하면 갓 줄기가 억세어 식감이 형편없었습니다. 작은 형이 섬에 들어오면 갓을 거둬들여야겠습니다. 어머니가 고갯길의 텃밭 진입 경사로에서 호박넝쿨을 뒤적이고 계십니다. 한여름 내내 마디호박이 끊임없이 내어주는 애호박을 기름에 살짝 튀겨 양념간장에 찍어 반찬으로 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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