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경자년庚子年 망종芒種의 텃밭

대빈창 2020. 6. 8. 07:00

 

송홧가루 날리는 /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 눈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이고 / 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윤사월」의 전문입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망종(芒種)은 윤사월 열나흘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윤사월이 시작되며 소나무가 날리는 송홧가루는 눈에 뜨이는 모든 사물을 노란색으로 물들였습니다. 봄비가 잦아, 고인 물웅덩이마다 기름띠처럼 송홧가루가 금빛 물살을 이루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망종의 이른 아침 텃밭 전경입니다. 자욱한 안개가 외딴섬의 봄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흘 동안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나날이었습니다.

텃밭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느리가 웅크려 앉은 채 올려다보았습니다. 느리는 세 살입니다. 녀석은 대빈창 해변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참견하기 좋아합니다. 모자를 쓰거나, 행색이 후줄근한 사람을 보면 영락없이 짖어댔습니다. 심지어 들고양이나 새들을 보고 목청을 돋우었습니다. 느리는 해가 떨어지면 창고 한 칸 집에 들여 보냈습니다. 떨어진 문짝으로 입구를 가렸습니다. 해가 뜨면 문짝을 옆으로 제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이제 느리가 군 일을 시키는구나!”

양파가 줄기를 누이기 시작했습니다. 수확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증표입니다. 느리 앞의 투명비닐이 피복된 두 두둑의 땅콩이 잎사귀를 한창 키웠습니다. 하지감자 잎이 무성합니다. 완두콩이 넝쿨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붙잡습니다. 마늘잎과 줄기가 누렇게 시들어갔습니다. 완두콩 두둑 가장자리에 덮인 부직포는 어머니의 쌈 채소 온실입니다. 상추와 고수,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 온 양귀비 두 포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햇빛을 못 봐 연하기 그지없는 잎을 뜯어 밥상의 쌈으로 올렸습니다.

경계석과 석축의 자투리땅에 어머니는 알뜰하게 찰옥수수와 땅콩을 심었습니다. 우리집 텃밭에도 고라니 방지용 그물 울타리를 둘렀습니다. 텃밭 시금치 두둑의 부직포를 벗긴 그 날밤, 여지없이 뒷산에서 고라니가 내려와 새순을 말끔하게 뜯어 먹었습니다. 겨우내 어머니가 부직포를 씌워 키운 시금치를 날이 풀리자 고라니들이 노렸습니다. 창고에 갇힌 느리는 제 임무를 망각한 채 쿨쿨 잠만 잤습니다. 보다 못한 아랫집 형님이 읍내에 나간 김에 철물점의 말짱과 그물을 사와 뚝딱 텃밭에 울타리를 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