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기해년己亥年 소서小暑의 텃밭

대빈창 2019. 7. 8. 07:00

 

 

 

위 이미지는 소서(少暑)의 먼동이 터오면서 어머니가 텃밭작물의 밤새 안녕을 보살피고 계십니다. 언덕길의 텃밭 진입로에 묻은 마디호박에서 애호박 두 개를 따 품에 안으셨습니다. 소서는 24절기의 열한째로, 본격적으로 더위가 몰려오고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 무덥습니다. 구석진 창고 한 칸의 집 앞 시멘트 바닥에 느리가 널브러져 늦잠에 빠졌습니다.

 

“밤에 노루 잘 지켜, 노루가 다 뜯어먹잖아”

 

열어 놓은 창문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잡종 진돗개 느리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올해 유달리 고라니가 극성입니다. 언덕길 건너편 앞산에서 밤이면 내려와 고추, 땅콩, 콩잎에 입을 댔습니다. 덩치가 커 목소리가 우렁찬 느리의 짖는 소리가 연일 어두운 허공을 갈랐습니다. 고라니가 목줄에 매인 느리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매일 밤 고라니의 텃밭 나들이가 이어졌습니다. 나는 잠결이 묻은 소리로 열려진 창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느리야, 시끄러” 개는 말귀를 알아듣고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야생의 풀이 억세져 고라니가 텃밭 작물을 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밭모퉁이 두 그루는 고라니에게 잎을 뜯겨 고추만 달렸습니다. 꽃이 피기 시작한 땅콩 잎까지 녀석들의 노략질 대상입니다. 청양 고추는 잎도 매웠고, 땅콩의 두텁고 기름진 잎은 야생동물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고라니는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파를 거둔 두둑에 깔린 검은 비닐의 숭숭 뚫린 구멍마다 어머니는 콩을 놓으셨습니다. 수확한 양파는 줄기를 잘라, 그물망에 담아 햇볕에 대여셋동안 말렸습니다. 어머니는 두둑에 열 포기의 양파를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반찬이 궁하면 텃밭에서 그대로 캐 외피를 벗겨 고추장에 찍어 먹는 비상식품이었습니다.  올해 양파는 평년작이었고, 마늘 농사는 폐농에 가까웠습니다. 씨마늘 종구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작년 늦가을 마늘을 정식하면서 소독을 못한 불찰이었습니다. 살균제가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주말 농협은 문을 닫아, 할수없이 소독을 않고 마늘을 심었습니다. 포장에 마늘흑색썩음균핵병이 번져 줄기가 시들어갔습니다. 때에 이르러 마늘을 캐보니 크기가 형편없었습니다.

지구가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주문도 봉구산 자락을 일군 밭작물이 타들어갔습니다. 특별한 관수시설이 없는 섬 주민들은 화물차나 경운기의 적재함에 대형 물통을 싣고 지하수를 받아 물을 대었습니다. 집 앞 언덕길을 오르는 경운기의 엔진음이 무게를 못 이겨 신음을 내질렀습니다. 어머니는 현관 의자에 앉아 유리창을 통해 텃밭을 내려다보는 것이 소일거리입니다. 대낮에도 고라니가 앞산에서 나와 길을 건너 텃밭을 가로질러 잡풀이 한길이나 자란 묵정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참깨를 두 두둑을 심으셨습니다. 참깨 종자를 넣고 부직포를 덮어 멧비둘기의 피해를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거름이 과해 참깨가 웃자랐습니다. 바람이 세차면 모두 넘어지게 생겼습니다. 뒷집 형수가 한 수 일러주었습니다. 참깨나 들깨 밭은 거름을 주지 않는 법이라고. 지금쯤 참깨는 거름기가 없어 누렇게 떠야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우리집도 고라니 방지용으로 텃밭에 폐그물을 둘러야할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