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무술년戊戌年 설날의 텃밭

대빈창 2018. 2. 12. 07:00

 

 

「겨울 감나무는 텃새들의 식량창고다」에 등장하는 섬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감나무 옆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회 종지기인 할머니가 일요일 오전예배를 보실 때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보리 문둥이’인 경상도 사내답게 말이 없으시고 고집이 세셨습니다. 금요일 저녁 심방도 할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모임을 할 수 없습니다. 요행히 할아버지가 뭍으로 출타하셨을 때 할머니는 교인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두 노인데. 할머니는 관사 부엌데기와 겨울 한철 굴쪼기로 할아버지는 망둥어 낚시로 가욋돈을 만지셨습니다. 삼우제를 지낸 가장 추웠던 날 자꾸 뿌리치시는 할머니 손에 억지로 부의금을 전해 드렸습니다.

몇 십 년만의 최강한파로 바다에 얼음이 났습니다. 한강에서 떠내려 온 얼음장과 갯벌에 들러붙은 성에가 좁은 해협에 끼여 서로 아우성을 지릅니다. 본도와 섬을 오가는 도선은 불규칙하게 물이 가장 많이 미는 물때에 하루 한번 운행합니다. 섬의 겨울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돕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섬을 지키던 노인네들이 저 세상으로 하나둘 떠나셨습니다. 올 겨울의 이상 추위를 이겨내기 힘드신가 보다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따라 섬에 정착하신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머니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이겨내셨습니다. 고명딸인 막내 누이를 가슴에 묻은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내일모레가 설날입니다. 옥상에 올라 텃밭을 손전화 사진에 담았습니다. 세 두둑에 부직포가 씌워졌습니다. 연이은 두 두둑은 마늘을 묻고, 떨어진 한 두둑은 양파를 심었습니다. 연일 영하의 날씨로 잔설이 그대로입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대빈창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우리집 텃밭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텃밭은 안채 대청마루처럼 잡풀 한포기 없이 반들반들했습니다. 어머니는 큰 수술이후 불편한 몸으로 아들 형제에게 텃밭 가꾸기 비법을 전수시키려 애를 쓰셨습니다. 아둔한 제가 어머니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오래 못 갈 것 같다. 마늘과 양파를 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올 겨울 폐렴으로 일주일 병원 생활을 하신 후 부쩍 몸과 마음이 약해지셨습니다. 텃밭농사가 나의 손에 달렸다고 마음을 다지는 정초입니다. 작년 연말에 심하게 앓은 독감으로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두 달이 채 못되어 의지가 약한 나는 허물어졌습니다. 엊그제 이틀 술병이 도져 어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해 드렸습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을 가만히 읊조립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텃밭을 부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술년戊戌年, 김장을 부치다.  (0) 2018.09.10
깨어나다. 봄  (0) 2018.04.05
늦은 김장을 담그다.  (0) 2017.11.27
갓김치를 담그다.  (0) 2017.11.06
백로白露에서 추분秋分으로 가는 텃밭  (0)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