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깨어나다. 봄

대빈창 2018. 4. 5. 07:00

 

 

뒤울안과 이어지는 봉구산에 어김없이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등산로 초입의 몇 그루 관목을 지나면 무덤 두 기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봉분 위의 할미꽃이 꽃받침을 하늘로 세웠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자 마른 숲에 생강나무 꽃이 파스텔 톤으로 노랗게 번졌습니다. 진달래가 엄지 손톱만한 분홍 꽃망울을 가득 매달았습니다. 숲속 바닥은 달래가 녹색 융단을 깔았습니다. 산자락 밭의 울타리 개나리가 꽃망울을 하나둘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찔레가 어지러울 정도로 새순을 내밀었습니다. 오솔길의 감나무·호두나무·대추나무는 천연덕스럽게 계절을 잊은 채 묵묵부답입니다.

바다에 봄이 왔습니다. 뻘그물을 설치하는 어부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부지런한 어부의 그물에 농어와 숭어가 일찍 찾아왔습니다. 기온이 오르자 겨우내 갯벌 깊숙이 몸을 사렸던 상합과 바지락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선외기의 엔진음이 요란스럽습니다. 주꾸미 소라방을 걷어 들이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잽쌉니다. 대빈창 해변의 토진이도 제 세상 만난 듯 엽록소를 찾아 깡총깡총 부지런을 떱니다. 뒷집 새끼 고양이 세 마리도 햇살을 쫓아 낮잠을 즐깁니다. 뒤울안의 명자나무는 벌써 잎을 틔웠고, 상사화는 부챗살 같은 잎을 벌렸습니다. 수국은 겨우 주먹 쥔 새순 몇 개를 줄기에 달았습니다. 방풍나물도 묵은 잎 사이로 새 잎을 내밀었고, 수선화는 경쟁하듯 촉을 내밀자마자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바야흐로 농사일이 시작된다는 절기 청명(淸明)입니다. 뭍 나들이 나갔다가 섬에 돌아오니, 주말을 맞아 섬을 찾은 작은형의 노고가 텃밭에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부직포가 씌어진 다섯 두둑을 형은 혼자 삽으로 일렀습니다. 날을 잡아 어머니는 땅콩, 완두콩, 강낭콩, 감자, 시금치, 호박, 피마자를 파종하시겠지요. 보름 전 부직포를 벗긴 양파가 햇살을 받아 하늘을 향해 줄기를 꼿꼿이 뻗쳤습니다. 마늘촉이 기계충 먹은 것처럼 우툴두툴하지만 달포 정도 지나면 키를 맞추겠지요. 밭 가장자리 아버지가 잠드신 모과나무가 가지 눈마다 새 잎을 내밀었습니다. 누이가 묻힌 매실나무는 꽃망울을 하얗게 매달았습니다. 재재작년 겨울 추위로 접 붙인 감나무 줄기가 동사했습니다. 고욤나무 뿌리에서 새로 줄기가 살아나  제법 키를 늘였습니다. 텃밭에 오래도록 어머니의 손길이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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