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북반구에서 낮 시간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를 지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로 향하고 있었다. 이름그대로 하지감자를 수확할 시기였다. 지구열대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한반도의 기존 장마 공식이 깨졌다. 그동안 장마전선은 북상하면서 제주도부터 시작되어 남부, 중부에 많은 비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마른장마가 이어지다가 국지적으로 무지막지한 폭우를 퍼부었다. 이를 ‘도깨비 장마’라고 불렀다. 이제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했다. 언제든지 때를 가리지 않고 비를 퍼붓기 때문이다.
하지가 하루 지난 주말 아침, 오랜만에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하도 반가운 빗님이시길래 슬라브 옥상에 올랐다. 단비에 젖어가는 텃밭을 이미지로 잡았다. 못자리를 앉힌 후 비 한 방울 없던 메마른 날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여명이 틀 시간이었는데 하늘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어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땅속 깊숙이 푹 젖을 만큼 쏟아졌으면, 일기예보는 빗방울이 흩날리거나 오후까지 매시간 1mm 이하였다. 오늘만큼 예보가 크게 틀렸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으시면서 밭이 많이 헝클어졌다.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의 텃밭농사를 이끄셨다. 맨 우측 두 두둑은 작은형이 입도入島하여 종자를 넣은 땅콩으로 어느덧 무성해졌다. 그 옆 두 두둑은 마늘이다. 대빈창해변 가는 고개를 오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마늘이 참 예쁘다고. 듣기 좋은 소리였다. 검정비닐을 멀칭한 좁은 두둑은 감자다. 김장배추를 수확한 두둑에 넣은 감자 농사는 형편없었다. 작년 수확한 감자의 손가락 길이만한 싹을 너댓번 자르고 심었다. 싹을 내민 포기가 고작 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뒷집 형수가 수박 모종을 두둑 중간에 심었다. 내년 봄에는 정부보급종 감자 10알을 얻어 심을 생각이다.
빈 두둑은 수확을 마친 완두콩을 심었던 자리였다. 옆 두둑의 양파 줄기가 많이 뉘었다. 빨리 수확하라는 신호였다. 양파도 마늘과 함께 수확하여 뙤약볕에 말려야겠다. 검정비닐 멀칭의 두둑은 참깨다. 일손이 거친 나는 물러섰다. 뒷집 형수가 참깨모종을 솎았다. 석축밑 좁은 두 두둑은 고추 차지였다. 꽈리고추 7포기, 아삭이고추 5포기, 청양고추 30포기를 심었다. 줄을 매는 몫은 나였지만, 방아다리아래 줄기를 솎아낸 것도 뒷집형수였다.
텃밭 김매기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벌써 서너번 등짐 분부기를 매었다. 작물에 피해가 갈까봐 고랑의 김은 호미로 맸다. 뒤돌아서면 풀이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게으른 텃밭 농사는 제초제를 빌리지 않고는 턱도 없었다.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았다. 김매기는 끝이 없었다. 아! 어머니는 호미 한자루로 완벽하게 제초를 했건만, 나의 텃밭농사는 왜 이렇게 서투른가.
22일 주문도의 강수량은 18mm 였다. 말그대로 단비였다. 23일 밤중에 요란한 번개를 동반한 비가 짧은시간에 7mm를 퍼부었다. 섬 날씨는 비가 귀했다. 주민들은 우스개소리를 했다. 일기예보에서 10mm라고 떠들면 빗방울 10개가 떨어진다고. 이번 비는 13개 읍면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았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비 맛을 본 작물들이 기지개를 켤 것이다. 이 말은 잡초에도 해당되었다. 어머니 몸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글을 쓴지 한 주일이 지났다. 텃밭에 나의 손길이 많이 갔다. 양파와 마늘을 수확했다. 마당에 그물을 펴고 뙤약볕에 사흘 말렸다가 뒤울안에 간수했다. 뒷집 형수가 참깨모종을 이식했다. 빈 양파 두둑에 두부콩을 파종했다. 남부지역에 정체되어 있었던 장마전선이 북상했다. 29일 저녁부터 밤중까지 돌풍이 몰아치며 20mm 비가 쏟아졌다. 일기예보는 비가 자주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가뭄이 아니라 게릴라성 폭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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