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갑진년甲辰年 한로寒露의 텃밭

대빈창 2024. 10. 10. 07:00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17번째 절기다. 찰 한寒, 이슬 로露가 말해주듯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서리로 변해가는 시기였다. 찬 이슬이 맺히면서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섬주민들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봉구산의 넓은잎나무는 단풍이 물들어가고, 겨울 철새 기러기가 다랑구지 대빈창 들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위 이미지는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한로의 텃밭’이다.

카테고리 〈텃밭을 부치다〉를 뒤적였다. 3년전 신축년辛丑年 한로에 올린 글이 있었다. 어머니가 고갯길의 텃밭 진입로 경사로에서 호박넝쿨을 뒤적이고 계셨다. 늙은호박을 갈무리하시려는 모양이다. 3년전, 그 시절이 그리웠다. 어머니는 텃밭작물을 돌보면서 큰 낙을 얻으셨다. 텃밭 두둑마다 각종 채소가 가득 들어찼다. 가히 어머니는 섞어짓기, 돌려짓기, 사이짓기의 마술사였다. 고갯길을 오르는 주민들마다 잡초하나 없이 매끈한 텃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으시면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텃밭에 얼씬 하실 수가 없었다. 발바닥을 끄는 보행으로 무릎을 굽혔다폈다하는 계단은 무리였다. 어머니는 텃밭 작물을 가꾸는 요령을 나에게 한가지씩 전수해주셨다. 하지만 아둔한 나는 어머니가 평생 몸에 익힌 노하우를 한두 해에 배울 수가 없었다.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눈에도 텃밭이 엉성하게 흐트러졌다.

오른쪽 빈 두 두둑은 이번 달 마지막 주일에 마늘 종구를 파종할 자리다. 작은형이 입도入島하여 1박2일동안 세 식구가 종구를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소독하고, 두둑을 손질하고, 종구를 묻어야한다. 검은 비닐멀칭 두둑은 나의 어설픈 텃밭농사가 빚은 참사였다. 무섭게 돋는 잡초를 막을 요량으로 비닐을 씌웠다. 배추가 한 두둑, 알타리무가 한 두둑, 무가 한 두둑 나란하다. 작년에는 무가 두 두둑이었는데, 풍년으로 갈무리에 애를 먹었다. 놀리는 한 두둑은 읍내 종묘상에서 구입할 양파묘를 이식할 예정이다. 양파 포트묘 한 판으로 사이를 넓게 두면 반 두둑을 차지할 것이다.

그 옆 두 두둑의 무성한 작물은 서리태다. 시기가 늦었지만 감나무집 형수의 조언대로 파종하고 순지르기를 해주었다. 그런대로 수확을 앞두고 있다. 옆 빈 두둑은 참깨를 수확했다. 참깨를 말리고 털면서 우리 두 식구가 먹을 참기름은 넉넉하다고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셨다. 올해 고추농사는 완전 망쳤다. 아삭이 고추 5포기, 꽈리 고추 7포기, 청양고추 30포기를 심었지만, 수확한번 제대로 못했다. 나의 게으름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사나흘 간격으로 농약을 살포해야 버틸 수 있는 열대작물 고추를 가꾸면서 나는 고작 세 번 살충제ㆍ살균제를 뿌렸다. 벌레 먹고 탄저병ㆍ역병에 바이러스까지.

어머니가 살아계시는동안 텃밭농사는 그런대로 이어갈 것이다.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잡초는 싹이 트는 대로 호미로 긁어주는 것이 요령이었다. 올해 땅콩 두 두둑은 고라니가 숨어들어도 모를 지경으로 잡풀이 울창했다. 땅콩 뿌리와 서로 얽혀 제거가 불가능했다. 어머니처럼 매일 먼동이 터오는 시간 텃밭에 내려가 호미로 어린 잡초를 긁어내야겠다. 올해 텃밭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에서 두손두발을 다 든 나의 참패였다. 제초제를 빌어서, 간신히 한해 농사 마무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마늘ㆍ양파를 파종하고, 서리태를 수확하고, 김장을 담그면 한해 텃밭농사도 끝난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책에 파묻혀 지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