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계묘년癸卯年, 김장을 담그다.

대빈창 2023. 11. 13. 07:30

 

계묘년癸卯年 입동 다음날, 작은형이 첫배로 섬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 75년 노하우가 빛을 발할 것이다. 뒷집 고양이 어린 흰순이도 한 몫 하겠다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 지시대로 텃밭의 쪽파를 큰 플라스틱 대야와 작은 함지박에 가득 차게 뽑았다. 그때 작은 형 차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열린 봉당에서 쪽파를 다듬었다. 작은형은 꼼꼼한 성미대로 알타리무를 손질했다. 나는 배추 밑동을 도려냈고, 무를 간단없이 머리와 꼬리를 잘라 마당으로 날랐다. 올해 김장채소 무, 배추, 알타리, 쪽파 모두 밑동이 굵고, 포기가 차서 탐스러웠다. 텃밭농사는 보기 드물게 풍년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무를 수세미로 닦아 광주리에 담아 물기를 말렸다. 점심을 먹고 오수에 빠졌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 냉장고에 얼려 둔 김장 양념들을 모두 꺼내  해동시켰다.

둘째 날,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살얼음이 얼었다. 배추를 반으로 가르고 소금물에 담갔다. 커다란 함지박 두 개에 눕혀놓고 굵은 소금을 술술 뿌렸다. 간이 배어들기를 기다렸다. 알타리무도 소금을 뿌려두었다. 점심을 먹고 작은형은 알타리무를 서너 번 뒤집어 흙물을 씻어냈다. 나는 통 큰 배추는 왕소금을 술술 뿌리고, 작은 포기는 다른 통에 옮겨 담았다. 배추 숨을 죽이는 일련의 작업이었다. 감나무집 형수가 어떻게 되가는지 궁금하다고 왔다. 뒷집형수는 돌갓을 가져와 다듬었다. 작은형이 알타리무를 양념과 버무렸다. 총각김치가 완성되었다. 저녁을 먹고 작은형과 나는 무채를 썰었다. 생강, 마늘, 생새우, 새우젓, 돌갓을 넣고 버무렸다. 김장 담그기에서 가장 힘든 과정이었다.

셋째 날,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졌다. 논에 괸 물이 얼어붙었다. 이른 아침 소금물에 담긴 배추를 물에 헹구어 평상에 차곡차곡 쌓았다. 아랫집 할머니, 뒷집 형수의 언니, 감나무집 형수, 어머니까지 네 분이 마루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절임 배추에 양념 속을 넣었다. 작은 형은 마당의 절임 배추를 나르는 뒷일꾼을 담당했다. 나는 일을 거들러오신 귀한 분들께 커피를 대접했다. 김장김치를 김치통에 갈무리했다. 작은형은 깍두기를 담그고, 나는 짠지를 담갔다. 입이 넓은 항아리에 애기 머리만한 무들을 깨끗이 씻어 앉힌 다음, 굵은 소금을 충분히 쟁였다. 올해 무는 대풍으로 한 두둑이 그대로 남았다. 감나무집에 한 포대 가득 무를 보냈다. 아직 한 판지 가득이다. 서울 이모와 뒷집 형수네 김장에 보탤 것이다. 올 한해 농사가 끝났다.

넷째 날, 작은형은 김장김치를 싣고 아침배로 섬을 떠났다. 나는 텃밭의 무를 싹이 안 나게 머리를 자르고, 겨울용 국거리로 창고에 갈무리했다. 가빠로 단도리만 잘하면 영하 20도에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한겨울 추위가 닥쳐도, 집안에 웅크린 채 흰쌀밥과 김장김치로 버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