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도 느리 부락에서 어머니의 유일한 말동무인 아랫집 할머니에 따르면 우리 텃밭은 집터였습니다. 할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 셋입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오셨다고 하니 믿을만한 소식통입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의 텃밭은 지대가 높아 세찬 빗줄기에 해마다 표토가 쓸려 내려갔습니다. 온돌로 쓰였던 네모난 시멘트가 밭을 일굴 때마다 드러났습니다. 작은형과 나는 힘을 합쳐 밭가에 쌓았습니다. 이미지에서 고라니 방지용 그물에 매인 줄을 묶었습니다.
오른쪽 두 두둑은 무밭입니다. 올해 구입한 씨앗의 무청이 옅은 색이고, 묵은 씨앗을 뿌린 두둑의 무청 색깔이 짙습니다. 제 눈에는 확연히 드러나 보입니다. 땅콩을 수확한 빈 두 두둑이 보입니다. 멀칭 했던 투명 비닐이 반쯤 흙속에 묻혔습니다. 여느 해보다 유난히 줄기가 무성하더니, 꼬투리 속 땅콩은 부실했습니다. 햇살에 말려 꼬투리를 까니 덜 여문 땅콩이 수두룩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늘 종구를 묻을 두둑입니다.
배추가 한 두둑 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취로사업을 나오신 할머니들이 텃밭을 내려다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배추가 참 예쁘구나” 반 두둑의 여린 새잎은 알타리무입니다. 흙내를 맡았는지 이제 본엽을 올렸습니다. 두 두둑은 서리태와 들깨가 뒤섞였습니다. 빈 두둑에는 김장용 파인 쪽파 종구를 묻었습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민지 십오여 년 만에 제대로 고추농사를 지었습니다. 청양고추 오십 포기를 심었는데 마른 고추 한 관을 수확했습니다.
“농약을 한 번밖에 안 뿌렸는데 고추가 제법이구나.”
“할머니, 제가 농약을 세 번 쳤어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뒷집 형수가 답했습니다. 자기집 텃밭에 농약을 살포하고 남은 약물을 우리 고추밭에 뿌려 준 것입니다. 형수의 보이지 않은 노고가 알찬 고추 수확으로 드러났습니다. 무를 솎던 형수가 대추 한 알을 따다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씨알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나는 대추를 아주 좋아해”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올해 대추가 처음 열매를 달았습니다. 산림조합에서 묘목을 사다 심은 지 얼추 6-7년은 된 것 같았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미친 대추나무’ 취급을 하며 나는 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누렇게 익으면 어머니께 따드려야겠습니다. 쌓인 온돌에 묶인 고라니 방지용 그물 줄 너머의 대추나무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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