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지속되던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33℃가 웃도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열대야로 기분 좋은 숙면은 물 건너갔다. 매스컴은 아우성을 질러댔다. 역사 이래 가장 무더운 7월이었다고. 절기는 열세 번째 입추立秋를 향하고 있었다.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 시기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처럼 김매기도 끝나가고 시골은 모처럼 한가해 질 때다.
위 이미지의 텃밭은 한 눈에 봐도 흐트러졌다. 작년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어머니가 부쩍 보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두 번 직행했다. MRI 촬영을 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섬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신경과 진찰을 예약했다. 텃밭으로 내려서는 계단이 어머니에게 벼랑으로 다가왔다. 김매기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풀을 베고 돌아서면 풀이 자라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어머니의 몸이 무너지면서 텃밭도 흐트러졌다. 김장채소를 파종할 빈 두둑에 잡초가 우거졌다. 나는 읍내 영농자재센터에서 제초제용 등짐분무기를 구입했다. 우리 모자는 2008년 초겨울에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 삶터를 꾸렸다. 텃밭농사가 어언 15년을 넘겼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은 사시사철 자식들 밥상에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청정 무공해 채소를 올렸다. 당신은 호미 한 자루로 텃밭 농사를 완성하였다. 잡초가 텃밭에 보이면 자라기 전에 미리 제거하는 것이 어머니 텃밭김매기 요령이었다.
15년의 공든 탑이 이제 무너졌다. 나는 배추, 무, 쪽파를 파종, 이식할 텃밭 네 두둑에 제초제를 살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풀은 누렇게 말라 죽을 것이다. 가축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두둑을 이르고, 골을 타고, 씨앗을 파종하고, 부직포를 씌울 것이다. 나의 책장에 두 손가락으로 꼽기에 부족한 생태농업에 대한 책이 쌓였다. 나의 게으름은 이론을 현실화시키는데 턱없이 무능했다.
이미지의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길의 가드레일 안쪽에 심은 길쭉한 땅콩 밭은 호미질로 제초했다. 잡초의 생장속도는 무서웠다. 보름 간격으로 여명이 터오는 것을 보며 나는 호미를 손에 들었다. 쇠비름, 명아주, 방동사니,······. 어머니는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막내아들에게 텃밭 농사요령을 하나둘 전수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실까. 당신의 호미질로 16년째 이어오던 무비료, 무농약 텃밭농법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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