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참으로 오랜만에 작은 형이 섬에 들어오셨다. 도금공장 공장장 시절, 어머니가 계신 섬을 자주 찾아 갯벌의 조개잡이, 가을철 망둥어 낚시를 즐겼다. 형은 천성이 부지런한 분이다. 노동유연화 정책은 형의 노동력을 악착같이 빠는 문어 흡반이었다. 공장은 파산되었고, 형은 실업자 신세로 몇 달을 버티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산업쓰레기(스티로폼)를 수거하는 일이다. 쉬는 날은 토요일뿐이었다.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느라 부족한 잠을 때우려 낮잠으로 소일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셨다. 실내에서 워커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옮기셨다. 정형회과에서 MRI를 찍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었다. 진료과목을 신경과로 변경했다. 뇌 MRI를 찍자 굵은 혈관에 이상이 나타났고, 신경외과 진찰과 연결되었다. 다음 주 어머니는 파킨슨병 진단 뇌 CT 촬영과 신경외과 의사를 만날 것이다.
텃밭 계단을 내려서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행보조기에 앉은 어머니의 안쓰러운 눈길이 머물렀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을 계산해 오후 4시부터 삽자루를 들었다. 오늘 할 일은 네 두둑에 가축퇴비와 아궁이에서 퍼낸 재를 뿌리고 삽으로 흙을 이르고, 쇠스랑으로 굳은 흙을 깨뜨리는 평탄작업이다. 무성한 잡초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제초작업을 포기했다. 두둑마다 가득 덮은 잡초를 삽으로 제거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살인적인 폭염에 말그대로 땀으로 목욕을 했다. 다한증多汗症의 나는 어쩔 수 없지만 뼈만 남은 작은 형의 셔츠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제법 텃밭의 두둑이 모양을 갖추자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음날 새벽 먼동이 터오면서 형제는 텃밭에 들어섰다. 오른쪽 두 두둑에 무씨를 파종하고 부직포를 씌웠다. 땅콩과 콩 사이 두 두둑은 빈 채로 부직포를 씌우고 검정비닐을 멀칭했다. 사나흘 이어지는 비소식이 있었다. 비가 그치면 나는 비닐멀칭 두둑에 배추 포트묘를 이식할 것이다. 부직포를 씌운 두둑은 겉저리용 배추를 이식하고, 알타리무를 파종할 예정이다. 마당 양쪽 가장자리 기다란 밭의 대파를 옮겨 심고, 쪽파 종구를 묻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일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토양살충제를 뒤늦게 부직포를 걷고 뿌렸다. 작은형은 점심배로 섬을 떠났다. 동지 무렵 김장을 담글 때 작은 형은 다시 섬에 들어올 것이다.
나의 블로그 〈daebinchang〉의 한 카테고리 ‘텃밭을 부치다’의 지난 글들을 연다. 어머니와 작은 형, 누이동생까지 네 가족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텃밭을 부치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누이동생은 저 세상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당신의 몸 가누기도 힘이 부치셨다. 작은 형은 천민자본주의의 노동착취에 신음하며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어머니가 오래전에 말씀하셨다.
“우리가 직접 길러, 찬을 대는 것이 용하구나. 밭이 없었으면 섬에서 무엇을 먹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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