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의 텃밭

대빈창 2023. 4. 10. 07:00

 

위 이미지는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이 닷새가 지나고,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입니다. 청명은 24절기에서 다섯 번째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농가에서 봄 일이 시작되는 절기로 논과 밭의 두둑을 가래질로 손보았습니다. 본격적인 논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로 농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독한 봄 가뭄으로 땅에 묻은 씨앗이 움쩍도 하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청명을 전후하여 주문도에 60mm 단비가 쏟아졌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마른 논에 물이 괴었습니다. 또는 물이 실렸습니다.

보름 전 이른 아침을 먹고 텃밭에 나섰습니다. 가축 퇴비가 몇 포 남지 않아 요소를 뿌리고 삽으로 일렀습니다. 토양살충제를 시용하고 네기로 두둑을 평탄하게 고릅니다. 홉바로 씨앗을 넣을 줄을 그었습니다. 어머니가 한 줄에 시범을 보였습니다. 멧비둘기의 해꼬지를 방지하고, 두둑에 수분을 보존하려 부직포를 씌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윤달이 든 해는 곡식이 흉년이라는데” 계묘년癸卯年은 윤달이 2월에 들었습니다.

작년 초겨울, 김장을 마치고 나는 읍내 농약상에서 양파 모종 포트 2판을 사왔습니다. 구멍 비닐을 멀칭하고 모종을 심었는데 모서리 1/3 정도가 비었습니다. 며칠 뒤 감나무집 형수가 집에서 키운 양파 모종으로 빈 부분을 매꾸었습니다. 보기 좋게 두둑이 가득 찼습니다. 양파 작황이 형편없습니다. 모종의 1/5 정도만 푸른 줄기를 내밀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청명 전후로 퍼부은 봄비가 아니었으면 그마저도 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은 눈도 많았고, 동장군이 맹위를 떨쳤습니다. 지금 저는 후회막심입니다. 올 겨울에 필히 양파 두둑에 부직포를 씌워야겠습니다.

막내아들의 완두콩 파종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작년 배추를 심었던 두둑에 감자를 묻으셨습니다. 두세 개로 쪼갠 씨감자를 봉당 아궁이 재를 묻혀 배추 포기가 심겨졌던 비닐 구멍마다 호미로 구멍을 파고 놓으셨습니다. 일손을 줄이려는 어머니의 지혜입니다. 어머니는 깔방석을 깔고 앉아 어렵게 일을 마치셨습니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이제 텃밭일도 몸에 부대끼십니다.

마늘밭 두 두둑의 부직포를 벗겼습니다. 그런대로 연두색의 마늘촉이 보기 좋습니다. 요소를 웃거름으로, 그리고 토양살충제를 뿌렸습니다. 나의 비료와 살충제 시용량은 눈대중입니다. 손에 요소와 살충제를 움켜쥐고 두둑에 술술 뿌렸습니다. 어머니가 호미로 고랑의 잡초를 뽑으셨습니다. “어머니, 놔 두세요. 제가 제초제로 잡을께요.” “아니다. 올까지는 내가 호미질을 할 수 있겠다.” 석축에 붙은 두둑은 청양고추를 심을 자리입니다. 새 달이 돌아오기 전에 묵은 세 두둑을 손보아야겠습니다. 두 두둑은 땅콩을 심을 자리입니다. 나머지 한 두둑은 어머니 재량에 맡겨야겠습니다.

어머니가 서해의 작은 외딴 섬 텃밭을 가꾸신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이제 제 한 몸 가누기도 벅차 하십니다. 어머니의 몸이 무너지면서 텃밭의 작물도 흐트러졌습니다. 양파는 듬성듬성 촉을 내밀었고, 완두콩은 1/3정도나마 싹을 틔웠습니다. 어머니의 텃밭농사는 그동안 돌려짓기·사이짓기·이어짓기의 마술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자의 텃밭 농사는 세월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